최한기, 벼슬을 거부하고 1만 권의 책을 쓴 조선의 기학자
사마시 합격자가 벼슬 대신 서재를 택했다
합격증을 받은 그는 임용 대신 서점 주소를 챙겼다.
1825년, 최한기는 사마시에 합격했다.
사마시란 오늘날로 치면 공무원 시험 1차 합격쯤 된다.
이걸 통과하면 양반의 체면이 서고, 본시험인 대과만 보면 관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췄다.
벼슬길로 가는 문을 스스로 두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서울 남촌, 지금의 중구 일대에 서재를 차리고 평생 재야 학자로 남겠다는 결심이었다.
당시 양반에게 이건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었다.
가문의 위신을 함께 내던지는 일이었다.
더 이상한 건 억울한 사정이 없다는 점이다.
정약용처럼 유배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재야로 밀려난 것도 아니었다.
최한기는 선택할 수 있었는데, 자리 대신 서재를 골랐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고도 개원 대신 평생 독학과 서재 생활을 택한 사람, 딱 그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손해인 선택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