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에 파문당한 스피노자가 평생 렌즈를 갈다 죽은 이유
1656년 7월 27일, 가장 잔혹한 저주가 낭독됐다
유대 공동체 400년 역사상 가장 가혹한 저주가 23살 청년 한 명에게 내려진 날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해요.
1656년 7월 27일, 암스테르담의 유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안에 나팔 소리가 울렸어요.
그리고 장로들이 양피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죠.
"낮에도 밤에도 저주받을지어다. 누워도 일어나도 저주받을지어다. 나가도 들어와도 저주받을지어다."
이것이 헤렘이에요.
유대 공동체의 파문 선고로, 오늘날로 치면 종교적 사형선고에 가깝죠.
헤렘을 받으면 가족도, 친구도 그와 4큐빗(약 2미터) 이내로 접근할 수 없어요.
가족 단톡방에서 강제 퇴장당하고 부모 연락처까지 전부 차단된 것인데, 그게 법적 효력을 지닌 종교 선언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저주를 내린 사람들이 누구냐는 게 더 기막혀요.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교재판소를 피해 목숨을 걸고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해 온 유대인들이었거든요.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사람들이, 동족 청년에게 역사상 가장 가혹한 파문을 내렸어요.
게다가 이유조차 공식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무엇을 말했는지, 왜 이 정도로 가혹했는지. 400년이 지난 지금도 확실하지 않죠.
단지 바뤼흐 스피노자라는 이름만 역사에 남았어요. 그 저주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