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석이 자기 법전으로 처형된 날
등석은 정나라 몰래 죽간에 사법전을 새겼다
국가의 법은 청동 솥에 새겨져 있었어요.
등석은 그것을 대나무에 다시 썼어요.
기원전 6세기, 중국 정(鄭)나라에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도가 하나 있었어요.
재상 자산이 형법 조문을 청동 솥에 새겨 광장에 세워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헌법 원문을 시청 앞에 전시해놓은 것과 비슷한데, 당시엔 이것조차 혁신으로 불렸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청동 솥의 법은 눈으로 읽을 수 있어도, 해석은 오직 관료들만 할 수 있었거든요.
평민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의 언어를 모르면 속수무책이었어요.
바로 그 틈을 등석이 파고들었어요.
그는 정나라의 관료였으면서, 동시에 국가 법체계를 우회하는 자신만의 사법(私法) 매뉴얼을 만든 사람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자기 회사 약관을 몰래 다시 써서 일반 시민에게 나눠주는 상황과 비슷해요.
등석이 만든 것을 죽형(竹刑)이라고 불러요.
대나무 조각, 즉 죽간에 새긴 법전이라는 뜻이에요.
국가 공인 청동 법전 옆에, 평민도 읽고 쓸 수 있는 민간 법전을 들고 나타난 거예요.
권력이 독점하던 법 해석 권한을 그는 거리로 꺼내버렸어요.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