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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입학 조건은 시험 성적이 아니었어요.
5년 동안 입을 다물 수 있느냐는 것이었죠.
기원전 530년경, 피타고라스는 남이탈리아 크로톤이라는 도시에 학교를 세웠어요.
지금의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에 있던 고대 그리스 식민도시예요.
그런데 이곳은 대학이 아니었어요.
신입 단원은 '아쿠스마티코이', 그러니까 '듣기만 하는 자'로 불렸어요.
커튼 뒤에 앉아서 피타고라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죠.
질문은 금지였고, 재산은 공동으로 내놓아야 했어요.
회사 신입사원 연수를 상상해 보세요.
첫 1년간 회의에서 발언 금지, 월급은 공동 계좌에 입금, 퇴사하면 동료들이 장례식을 치러준다고 하면요.
그게 피타고라스 학파의 입단 조건이었어요.
그리고 여기에 반전이 있어요.
이성과 증명의 상징, 수학의 출발점이 "질문 금지"라는 규칙 위에 세워졌다는 거예요.


대장간에서 들린 망치 소리 두 번이 서양 음악 이론 2,500년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피타고라스는 대장간 앞을 지나다 뭔가를 알아챘어요.
망치 크기가 달라도 두 망치의 무게 비율이 2:1이면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는 거죠.
이 이야기 자체는 후대에 과장되었지만, 현악기 줄 길이의 정수비와 음정 관계는 실제로 성립해요.
이 발견이 피타고라스학파에 불을 질렀어요.
"만물은 수다."
천체가 움직이는 것도, 음악이 아름다운 것도, 전부 정수비의 질서 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들은 심지어 '천구의 음악'이라는 개념을 주장했어요.
별과 행성이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가 있고, 그 소리도 정수비의 화음을 이룬다는 뜻이에요.
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그 소리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라고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돼요.
첫 번째 성공이 너무 강렬했던 거예요.
스타트업이 첫 제품을 대박 내고 나서 "우리 방식이 모든 것에 통한다"고 믿어버리듯, 피타고라스학파는 "수로 설명 안 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굳어졌어요.


피타고라스학파를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어요.
자기들이 가르친 수학이었죠.
학파 내부에 히파소스라는 수학자가 있었어요.
그는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 그러니까 √2를 정수의 비율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2:1도 안 되고, 3:2도 안 되고, 어떤 비율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히파소스는 결국 증명해냈어요.
√2는 어떤 정수의 비율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요.
이게 역사상 최초로 알려진 무리수, 즉 '비율로 나타낼 수 없는 수'의 발견이에요.
"만물은 수다"라는 학파의 신조가 바로 그 수학적 방법론에 의해 박살난 거예요.
진리를 추구한다던 사람들이 진리 앞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3세기 철학자 이암블리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히파소스는 이 발견을 외부에 공개했다가 바다에서 익사했고, 학파 동료들에 의해 수장되었다는 전승이 남아 있어요.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문이 사라지지 않고 전해진 이유는 있어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표방하면서 불리한 데이터를 가져온 직원을 내쫓는 조직이 지금도 존재하는 것처럼, 그건 꽤 믿음직스럽게 들리거든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피타고라스가 증명했다는 증거는 없어요.
기원전 509년 무렵, 피타고라스학파 입단을 거부당한 귀족 킬론이 폭동을 일으켰어요.
학파의 집회소는 불탔고, 피타고라스는 남이탈리아의 다른 도시 메타폰티온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숨을 거뒀어요.
교주는 그렇게 사라졌죠.
그런데 그의 이름은 죽지 않았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을 살린 건 a²+b²=c² 이 공식이에요.
하지만 이 정리는 피타고라스가 태어나기 1,000년 전에 바빌로니아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어요.
피타고라스 본인이 직접 이 정리를 증명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럼에도 이 정리는 그의 이름으로 수천 년을 살아남았죠.
어떤 가수가 평생 자작곡을 고집했는데, 사후에 한 번 불러본 남의 노래 커버 영상이 대표곡이 된 것처럼요.
정작 피타고라스가 평생을 바친 것들, 수에서 신성을 읽는 수비학이나 영혼이 여러 몸을 거쳐 환생한다는 교리는 거의 잊혔어요.
콩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이유도, 신성한 정수비의 질서를 해친다는 믿음이었는지 그의 입으로 직접 듣지 못했으니 알 길이 없죠.
이 남자가 진짜 수학자였는지, 종교 지도자였는지, 아니면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 시대의 산물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에요.
그리고 어쩌면, 교실 칠판에 지금도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기묘한 반전일 수도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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