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6세기 어느 밤, 한 남자가 우물에 빠졌다.
하녀는 웃었고, 동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 우물이 서양 철학의 첫 번째 장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플라톤의 책 『테아이테토스』에는 이 장면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던 탈레스가 그만 발 앞의 우물을 못 보고 빠져버렸고, 트라키아 출신 하녀가 이렇게 비웃었다.
"발밑도 못 보면서 하늘을 알겠다고?"
회사에서 "그런 거 고민해서 뭐 하냐"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면, 탈레스의 상황이 정확히 그것이다.
2600년이 지난 지금, 그 하녀의 조롱은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한 마디가 되었다.
정작 '쓸모없는 남자'는 서양 사상 전체의 출발점이 되었고.
탈레스의 대답은 틀렸다.
세상은 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그 틀린 대답 하나가 서양 문명 2600년의 방향을 바꿨다.
당시 세계의 모든 문명은 자연현상을 신의 행위로 설명하고 있었다.
천둥이 치면 제우스가 화가 난 것이고, 땅이 흔들리면 포세이돈이 창을 내리꽂은 것이다.
그것이 기원전 6세기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탈레스는 여기서 질문을 바꿨다.
"신이 그런 게 아니라면, 무엇이 이 세계를 이루고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이 순간을 기록하며 탈레스를 최초의 자연철학자로 명명했다. 자연철학자란 신화 대신 자연 그 자체에서 세계의 원리를 찾으려 한 최초의 사람들이다.
정답이 '물'이라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신 대신 자연에서 원인을 찾겠다"는 질문의 방식이 과학과 철학 전체를 낳은 것이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라고 말할 때, '왜?'라고 묻는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꾸는 순간과 똑같다.
6년간 두 제국이 쏟아부은 병력도 못 끝낸 전쟁을, 하늘이 5분 동안 어두워지는 것으로 끝냈다.
기원전 585년 5월 28일, 리디아와 메디아가 6년째 전쟁 중이었다.
리디아는 지금의 터키 서부, 메디아는 지금의 이란 북서부에 있던 고대 왕국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탈레스는 이 해에 일식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전투 중 하늘이 낮에 깜깜해졌다.
양측 병사들은 공포에 질렸고, 그 자리에서 즉시 휴전 조약을 맺었다.
탈레스 본인은 전장에 있지도 않았다.
이 사건은 역사상 정확한 날짜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민간인의 과학적 예측이 두 제국의 군대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일기예보가 소풍을 취소시키듯, 한 사람의 예측이 국제 전쟁을 중단시킨 것이다.
탈레스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뒤, 바로 가난한 철학자로 돌아갔다.
그에게 돈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탈레스의 가난을 들어 "철학은 쓸모없다"고 계속 조롱하자, 탈레스는 천문 관측으로 이듬해 올리브가 풍작일 것을 예측했다.
그리고 겨울에 밀레토스와 키오스 섬의 올리브 압착기를 전부 헐값에 미리 임대해버렸다. 밀레토스는 탈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다.
수확철이 오자 그해 올리브는 정말 풍작이었다.
압착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탈레스에게 독점 가격을 내야 했고, 그는 큰 부를 얻었다.
이 사건은 인류 최초의 선물(先物) 거래, 즉 미래 시점의 상품을 미리 계약하는 거래의 원형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탈레스는 돈을 번 뒤 이렇게 말했다.
"원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어. 하지만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거든."
그리고 다시 연구로 돌아갔다.
'좋아하는 일 하면 밥 굶는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곧장 이해될 것이다.
탈레스는 가난했던 게 아니라, 가난을 선택한 것이었다.
책 한 권 남기지 않은 이 올리브 장수의 이름이 2600년 뒤에도 불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