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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29년 봄 스위스 다보스에서 카시러와 하이데거가 칸트를 두고 맞붙었어요.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 앞에 던져진 유한한 존재로 봤고, 카시러는 인간이 언어와 예술 같은 상징을 딛고 그 유한함을 넘어 영원한 진리에 닿는다고 맞섰어요.
스키장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산골 마을 다보스를 떠올려 보세요.
1929년 봄, 그곳에서 유럽 학자들이 모이는 큰 강좌가 열렸어요.
여기서 당대 최고의 두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와 마르틴 하이데거가 사람들 앞에서 정면으로 부딪혔어요.
이게 바로 철학사에 남은 '다보스 논쟁'이에요.
두 사람은 겉으로는 임마누엘 칸트라는 옛 철학자의 책을 어떻게 읽을지를 놓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훨씬 큰 질문을 던지고 있었어요.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마치 같은 산을 서로 다른 길로 오르는 두 등반가처럼, 둘은 같은 물음 앞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켰어요.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고 불렀어요.
쉽게 말하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고 이 세상에 툭 던져진 존재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무엇보다 '유한한 존재'예요.
시간이 정해진 촛불 같은 거죠.
그는 이 유한함이야말로 인간의 진짜 모습이라고 봤어요.
반대로 카시러는 인간이 죽음에 갇혀만 있지 않는다고 봤어요.
우리는 언어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수학을 세우면서 자기 수명보다 훨씬 오래가는 것들을 남기잖아요.
카시러는 이렇게 인간이 객관적이고 필연적이며 영원한 진리에 닿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두 입장을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물음 | 하이데거 | 카시러 |
|---|---|---|
| 인간이란 | 죽음 앞에 던져진 유한한 현존재 | 상징으로 세계를 짓는 존재 |
| 진리란 | 유한한 삶 속에서만 잠깐 열림 | 객관적이고 영원함 |
| 칸트 읽기 | 인간의 유한함을 드러낸 철학 | 이성과 진리를 세운 철학 |
카시러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헤르만 코헨에게 배운 신칸트주의자였어요.
하이데거는 바로 그 신칸트주의를 겨냥해서, 칸트를 '유한한 인간의 철학자'로 다시 읽자고 밀어붙였고요.
카시러의 대표 생각이 여기서 빛나요.
그는 인간을 '상징적 동물(animal symbolicum)'이라고 정의했어요.
카시러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래요.
"Hence, instead of defining man as an animal rationale, we should define him as an animal symbolicum."
즉 인간을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이 아니라 '상징적 동물(animal symbolicum)'로 정의하자는 거예요.
이 표현은 1944년 책 『인간론(An Essay on Man)』에서 분명하게 나왔어요.
무슨 뜻일까요?
동물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만, 인간은 그 사이에 '상징'이라는 유리창을 하나 세워요.
배고픔을 느끼면 동물은 그냥 먹지만, 인간은 '밥'이라는 말을 만들고, 밥상 예절을 만들고, 추수 축제를 만들어요.
이렇게 인간이 세상과 자기 사이에 세우는 창문들이 바로 언어, 신화, 예술, 종교, 과학이에요.
카시러는 이걸 '상징형식'이라고 불렀고, 세 권짜리 『상징형식의 철학』(1923년, 1925년, 1929년)에 담았어요.
다보스에서 카시러가 하이데거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이거예요.
우리는 죽음에 갇힌 존재만은 아니라고요.
상징이라는 사다리를 놓고 유한함을 딛고 올라서서, 나보다 오래가는 문화와 진리에 닿는 존재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 논쟁을 '누가 이기고 누가 졌나'로 이야기해요.
젊고 강렬했던 하이데거가 이겼고 카시러가 밀렸다는 식이죠.
하지만 스탠퍼드 철학사전은 이걸 승패의 대결이 아니라, 신칸트주의와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이 부딪힌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해요.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이 극적으로 각색한 쪽에 가까워요.
그 뒤 두 사람의 길은 크게 갈렸어요.
카시러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총장을 지냈는데, 독일에서 유대인이 그 자리에 오른 첫 사례였어요.
하지만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자 독일을 떠나야 했고, 옥스퍼드와 스웨덴 예테보리를 거쳐 미국으로 갔어요.
그리고 1945년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어요.
논쟁의 진짜 결말은 강단이 아니라, 그가 겪은 이 험한 시대 속에 있었는지도 몰라요.
다보스 논쟁은 1929년 카시러와 하이데거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벌인 만남이에요.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 앞의 유한한 존재로 봤고, 카시러는 인간이 언어, 신화, 예술 같은 상징을 딛고 유한함을 넘어 영원한 진리에 닿는 '상징적 동물'이라고 맞섰어요.
승패로만 기억하기보다, 서로 다른 두 인간관이 정면으로 만난 장면으로 기억하면 이 논쟁이 훨씬 크게 보여요.
다음에 누군가 시나 그림, 수학 공식을 남기는 걸 보면, 카시러가 말한 '상징으로 유한을 넘는 인간'을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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