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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화적 사유란 인간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소망 같은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 있는 무엇'으로 지어내는 방식이에요. 카시러는 이 신화도 언어나 과학처럼 세계를 만드는 하나의 '상징형식'이라고 봤어요.
밤에 방에 걸어 둔 옷걸이가 사람 그림자처럼 보여서 깜짝 놀란 적 있나요?
사실 그건 그냥 옷걸이인데, 우리 마음이 무섭다는 감정을 얹어서 '누군가'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에른스트 카시러가 말한 신화적 사유가 바로 이런 마음의 작동이에요.
옛날 사람들은 천둥이 치면 '하늘이 화가 났다', 강이 넘치면 '물의 신이 노했다'고 생각했어요.
천둥은 그냥 공기가 부딪치는 소리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화난 마음'을 붙여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었죠.
카시러는 이걸 옛날 사람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아주 근본적인 방식이라고 봤어요.
신화는 틀린 과학이 아니라, 세상을 감정과 이야기로 짓는 또 하나의 방법인 거예요.
카시러의 대표작은 세 권짜리 『상징형식의 철학(Philosophie der symbolischen Formen)』이에요.
1923년에 1권 언어, 1925년에 2권 신화적 사유, 1929년에 3권 인식이 나왔어요.
여기서 '상징형식'이라는 말이 핵심이에요.
상징형식은 '세상을 담는 그릇' 같은 거예요.
똑같은 물이라도 컵에 담으면 컵 모양, 병에 담으면 병 모양이 되잖아요.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언어라는 그릇, 예술이라는 그릇, 과학이라는 그릇, 그리고 신화라는 그릇에 담아서 이해해요.
그릇마다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거죠.
신화라는 그릇에 세상을 담으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서로 연결돼요.
돌도 마음이 있고, 이름을 부르면 힘이 생기고, 그림자에도 영혼이 깃들죠.
카시러는 이 신화적 그릇이 과학보다 못한 게 아니라, 나름의 규칙과 짜임새를 가진 완결된 세계라고 봤어요.
그래서 '신화적 사유의 구조'를 파고든 거예요.
같은 일식을 봐도 신화적 마음과 과학적 마음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요.
표로 비교하면 이래요.
| 항목 | 신화적 사유 | 과학적 사유 |
|---|---|---|
| 세상을 보는 눈 | 모든 것이 살아 있고 마음이 있다 | 사물은 감정 없는 대상이다 |
| 원인 설명 | 신이 노해서 해를 삼켰다 | 달이 해를 가렸다 |
| 힘의 정체 | 이름·주문에 실제 힘이 있다 | 힘은 측정되는 법칙이다 |
| 나와 세계 | 나와 자연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 나와 대상이 분리돼 있다 |
여기서 중요한 건, 카시러가 과학만 옳다고 편들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원래 헤르만 코헨 밑에서 배운 마르부르크 학파 신칸트주의자였는데, 이 학파는 과학적 인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카시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화·언어·예술처럼 과학이 아닌 사유까지 전부 끌어안으려 했어요.
그래서 그를 그냥 '신칸트주의 계승자'라고만 하면 부족해요.
카시러는 1874년 독일에서 태어나 1945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이 아니라 '상징적 동물(animal symbolicum)'로 다시 정의하자고 했어요.
1944년 책 『인간론(An Essay on Man)』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Hence, instead of defining man as an animal rationale, we should define him as an animal symbolicum."
즉,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상징적 동물로 정의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무슨 뜻일까요?
인간은 세상과 곧바로 부딪치지 않고, 언어·신화·예술·종교·과학이라는 상징의 그물을 자기와 세상 사이에 쳐 놓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그물을 통해서만 세상을 봐요.
신화적 사유는 그 그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실이었던 셈이죠.
카시러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3년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나 여러 나라를 거쳐야 했지만, 세상을 향한 이 넓은 눈은 끝까지 놓지 않았어요.
신화적 사유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로 살아 있는 세계를 지어내는 마음의 방식이에요.
카시러는 이걸 과학보다 못한 미신이 아니라, 언어나 예술과 나란히 서는 하나의 '상징형식'으로 봤어요.
인간은 상징이라는 그릇으로 세상을 담는 '상징적 동물'이고, 신화는 그 가장 오래된 그릇이라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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