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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람은 세계를 눈으로 곧장 보는 게 아니라, 언어와 신화와 예술과 종교와 과학이라는 '상징의 그물'을 자기와 세계 사이에 쳐 두고 그 그물을 통해서만 세계를 만나요. 그래서 카시러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상징적 동물'이라고 불렀어요.
배고픈 고양이는 먹이를 보면 그냥 달려들어 먹어요.
자극이 오면 곧바로 반응하는 거죠.
그런데 사람은 밥 한 그릇 앞에서도 잠깐 멈춰요.
"이건 제사상 음식인가", "생일상인가", "이 김치는 할머니 손맛인가" 같은 생각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똑같은 밥인데도 우리는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뜻을 얹어서 봐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874년부터 1945년까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어요.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무언가를 하나 더 끼워 넣는다는 거예요.
그 '하나 더'가 바로 상징이에요.
1944년에 쓴 책 『인간론(An Essay on Man)』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Hence, instead of defining man as an animal rationale, we should define him as an animal symbolicum."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 대신 인간을 상징적 동물(animal symbolicum)로 정의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참고로 이 유명한 표현 자체는 1923년부터 1929년까지 나온 세 권짜리 주저 『상징형식의 철학』이 아니라, 나중에 나온 이 대중서에서 처음 딱 잘라 제시됐어요.
옛날부터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불렸어요.
생각하고 계산할 줄 아는 게 인간의 특징이라는 거죠.
그런데 카시러가 보기에 이 말은 너무 좁았어요.
우리가 하는 일에는 논리적 계산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볼게요.
무지개를 과학자는 '빛의 굴절'로 설명해요.
하지만 옛사람들은 무지개를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라는 신화로 이야기했고, 시인은 그걸 노래로 만들었어요.
이 셋은 전부 무지개라는 같은 대상을 다루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뜻을 만들어요.
카시러는 신화도, 예술도, 과학과 나란히 사람이 세계에 의미를 세우는 어엿한 방식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이성'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는 인간을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계산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상징을 만들고 그 상징 속에서 사는 능력 전체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거죠.
이 점이 카시러가 남달랐던 부분이에요.
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헤르만 코헨에게 배운 신칸트주의자였지만, 과학적 인식에만 집중하던 스승의 틀을 넘어 신화와 언어와 예술까지 끌어안았거든요.
카시러는 사람이 세계에 뜻을 세우는 큰 방식들을 '상징형식'이라고 불렀어요.
안경에 비유하면, 상징형식은 저마다 색이 다른 안경알이에요.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같은 세상이 다르게 보이죠.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하면 이래요.
| 상징형식 | 세계를 보는 방식 | 쉬운 예 |
|---|---|---|
| 언어 | 사물에 이름을 붙여 나눔 | '나무'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이 하나의 것이 됨 |
| 신화 | 세계를 힘과 이야기로 느낌 | 천둥을 신의 분노로 여김 |
| 예술 | 형태와 소리로 감정을 빚음 | 슬픔을 그림이나 노래로 표현 |
| 종교 | 성스러움과 의미의 질서를 세움 | 특정한 날을 거룩한 날로 삼음 |
| 과학 | 법칙과 함수로 관계를 잡음 | 무지개를 빛의 굴절로 설명 |
중요한 건,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이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신화가 유치하고 과학만 옳은 게 아니라, 각각이 인간 문화의 서로 다른 방이라는 거예요.
카시러가 인간 문화 전체를 '기호와 의미의 체계'로 읽어 낸 게 바로 이 대목이에요.
1929년 봄, 스위스 다보스에서 카시러는 젊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유명한 토론을 벌였어요.
하이데거는 사람을 세상에 내던져진 채 죽음을 향해 불안해하며 사는 존재로 봤어요.
반면 카시러는, 사람이 상징을 통해 시간과 죽음을 넘어서는 객관적이고 영원한 진리에도 가닿을 수 있다고 맞섰어요.
흔히 이 장면을 '누가 이겼나' 하는 대결로 이야기하지만, 그건 뒷날 극적으로 각색된 쪽에 가까워요.
실제로는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가 정면으로 만난 사건이었어요.
참고로 카시러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치며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총장을 지냈는데, 이는 독일에서 유대인이 그 자리에 오른 첫 사례였어요.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자 그는 독일을 떠나 영국과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갔어요.
카시러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사람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곧장 보는 게 아니라, 언어와 신화와 예술과 종교와 과학이라는 상징의 그물을 통해서만 세계를 만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인간을 계산하는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뜻을 만들고 그 뜻 속에서 사는 상징적 동물로 다시 정의했어요.
다음에 노래 한 곡, 국기 하나, 기념일 하루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상징적 동물이라는 작은 증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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