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상징형식의 철학은 인간이 언어·신화·예술·종교·과학 같은 상징의 체계를 통해서만 세계를 만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늘 어떤 '기호의 안경'을 끼고 세계에 의미를 입혀 이해한다는 뜻이지요.
놀이터에서 친구가 손을 흔들면, 우리는 그 손짓을 그냥 '팔이 움직였다'로 보지 않아요.
'안녕'이라고 읽지요.
빨간 신호등을 보면 '멈춰'라고 알아듣고요.
손짓도 신호등 색깔도 그 자체로는 아무 뜻이 없는데,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붙여서 읽는 거예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874년부터 1945년까지 살았어요)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어요.
인간은 세상을 맨눈으로 곧장 보는 게 아니라, 언어와 그림과 이야기 같은 '기호의 틀'을 사이에 두고 본다는 거예요.
이 틀 하나하나가 바로 '상징형식'이고요.
그는 이 생각을 『상징형식의 철학』이라는 세 권짜리 책에 담았어요.
제1권은 언어(1923년), 제2권은 신화적 사유(1925년), 제3권은 인식의 현상학(1929년)을 다뤘지요.
언어도, 옛날 신화도, 과학도 모두 세계에 의미를 입히는 서로 다른 '안경'이라고 본 거예요.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불렀어요.
생각할 줄 아는 게 인간의 특징이라는 거죠.
그런데 카시러는 이 정의를 살짝 바꿔야 한다고 봤어요.
그는 이렇게 썼어요.
"Hence, instead of defining man as an animal rationale, we should define him as an animal symbolicum."
풀면, 인간을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로 정의하는 대신 '상징적 동물(animal symbolicum)'로 정의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이 특별한 건 단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말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지어 세상과 자신 사이에 상징의 그물을 짜기 때문이거든요.
다만 이 '상징적 동물'이라는 표현은 세 권짜리 대작이 아니라, 1944년에 쓴 쉬운 요약서 『인간론(An Essay on Man)』에서 처음 또렷하게 나왔다는 점은 기억해 두면 좋아요.
카시러는 젊을 때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헤르만 코헨 밑에서 공부했어요(1896년부터 1899년까지).
이 학파는 '신칸트주의'라 불렸는데, 주로 과학이 어떻게 참된 지식이 되는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카시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과학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본 거죠.
무서운 신화도, 아름다운 예술도, 매일 쓰는 말도 저마다 세계를 붙잡는 방식이라고요.
그래서 그를 그냥 '스승의 생각을 이어받은 사람'으로만 소개하면 조금 부족해요.
그는 과학 바깥의 신화·언어·예술까지 끌어안으려고 스승의 틀을 자기 식으로 넓힌 사람이니까요.
| 물음 | 마르부르크 신칸트주의 | 카시러의 상징형식 |
|---|---|---|
| 주로 본 것 | 과학적 인식 | 언어·신화·예술·과학 모두 |
| 핵심 질문 | 참된 지식은 어떻게? | 인간은 어떻게 의미를 짓는가? |
1929년 봄, 스위스 다보스에서 카시러는 젊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유명한 토론을 벌였어요.
하이데거는 인간이 죽음 앞에 던져진 불안한 존재라는 점을 파고들었고, 카시러는 사람이 만든 문화 속에 시대를 넘어 통하는 객관적이고 영원한 진리가 있다고 옹호했지요.
흔히 이 만남을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는 드라마처럼 이야기해요.
하지만 그건 뒷사람들이 극적으로 각색한 쪽에 가까워요.
실제로는 서로 다른 두 철학이 정면으로 마주친 사건이었지, 승패가 갈린 시합은 아니었어요.
카시러는 함부르크 대학 총장까지 지냈지만(1929년부터 1930년까지, 독일에서 유대인이 그 자리에 오른 첫 사례였어요),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자 독일을 떠나야 했어요.
옥스퍼드, 스웨덴, 미국을 거쳐 1945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그의 생각은 지금 우리 일상과도 맞닿아 있어요.
이모티콘 하나로 마음을 전하고, 브랜드 로고를 보고 곧장 의미를 읽는 우리는 여전히 상징으로 세계를 짓는 존재니까요.
카시러의 상징형식의 철학은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사람은 세계를 맨눈으로 보지 않고 언어·신화·예술·과학이라는 '의미의 안경'을 끼고 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이전에 '상징적 동물'이라는 거고요.
그는 과학만 따지던 스승의 틀을 문화 전체로 넓혔고, 그 눈으로 보면 우리가 매일 쓰는 이모티콘 하나까지도 세계에 의미를 입히는 작은 상징형식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