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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톰슨은 내가 직접 누군가를 해치는 '행위'와, 벌어지는 일을 막지 않고 그냥 두는 '방관'이 결과가 같아 보여도 도덕적 무게가 다르다고 봤어요. 그래서 다섯을 살리려고 한 사람을 직접 죽이는 일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요.
연못에 사람이 빠졌다고 상상해 볼게요.
첫째, 내가 그 사람을 물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둘째,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지만 이미 빠진 사람을 그냥 지나칩니다.
두 경우 모두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우리 마음속 무게는 전혀 다르게 느껴져요.
앞은 내가 직접 '한' 일, 뒤는 내가 막지 않고 '둔' 일이니까요.
주디스 자비스 톰슨이 평생 파고든 질문이 바로 이것이에요.
어렵게 말하면 '죽이는 것(killing)'과 '죽게 두는 것(letting die)'의 차이, 쉽게 말하면 행위와 방관의 차이지요.
톰슨은 결과가 똑같더라도 이 둘 사이에는 진짜 도덕적 차이가 있다고 봤어요.
직접 손을 대서 해친 쪽이 더 무겁다는 거예요.
톰슨은 1929년 뉴욕에서 태어나 2020년 세상을 떠난 미국 철학자예요.
1964년부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오랫동안 가르쳤고, 로렌스 S. 록펠러 철학 석좌교수를 지냈지요.
톰슨이 이 질문에 매달린 데는 이유가 있어요.
세상에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보는 생각이 있어요.
다섯 명을 살리려고 한 명을 희생시키면, 결국 넷이 더 산 셈이니 이득이라는 계산이지요.
이런 관점을 결과주의라고 불러요.
톰슨은 이 결과주의에 반대했어요.
만약 결과만 중요하다면 밀어서 죽이든 그냥 두든 아무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우리 도덕 감각은 분명히 둘을 다르게 느끼거든요.
톰슨은 1976년 논문 '죽이기, 죽게 두기, 그리고 트롤리 문제(Killing, Letting Die, and the Trolley Problem)'에서 이 차이를 정면으로 다뤘어요.
가장 유명한 예가 트롤리 문제예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달려오고, 앞 선로에는 다섯 사람이 묶여 있어요.
내가 옆에 있는 손잡이를 당기면 전차는 다른 선로로 방향을 틀고, 그쪽에는 한 사람만 있어요.
많은 사람이 '손잡이를 당겨 다섯을 살리는 편이 낫다'고 답해요.
그런데 상황을 바꿔서, 다섯을 살리기 위해 멀쩡한 한 사람을 붙잡아 직접 죽여야 한다면 대부분 손사래를 쳐요.
살린 숫자는 똑같이 다섯인데 말이지요.
왜 한쪽은 되고 한쪽은 안 될까요?
톰슨은 여기서 행위와 방관, 직접 해침과 그렇지 않음의 경계가 우리 판단을 가른다고 봤어요.
참고로 이 문제를 처음 낸 사람은 필리파 풋이고, 톰슨은 여기에 '트롤리 문제'라는 이름을 붙이고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에요.
톰슨이 발명한 게 아니라는 점은 자주 오해받아요.
톰슨은 1985년 예일 로 저널에 '트롤리 문제(The Trolley Problem)'라는 논문도 따로 실었어요.
톰슨은 1971년 논문 '낙태에 대한 옹호(A Defense of Abortion)'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상상을 내놓아요.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내 동의도 없이 내 혈관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몸과 연결되어 있어요.
아홉 달 동안 내 몸이 그의 생명을 대신 유지해 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여기서 내가 연결을 끊으면, 나는 그를 '죽인' 걸까요, 아니면 그저 내 몸으로 '살려 주기를 그만둔' 걸까요?
바로 죽이기와 죽게 두기의 경계 문제예요.
톰슨은 태아가 인격체이고 생명권을 가진다는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인 채로도, 내 몸을 내줄 의무까지 자동으로 생기는 건 아니라고 논증했어요.
초점을 태아의 권리에서 임신한 여성의 권리로 옮긴 거예요.
이 논문은 미국 로 대 웨이드 판결(1973) 직전에 나와 낙태 논쟁이 다뤄지는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아요.
몇 가지를 짚어 둘게요.
첫째, 트롤리 문제는 톰슨의 발명이 아니에요.
원안은 필리파 풋의 것이고 톰슨은 이름을 붙여 키운 쪽이에요.
둘째,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는 '태아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람이라고 인정한 뒤에도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인 거예요.
셋째, 행위와 방관에 차이가 있다는 말이 '방관은 늘 괜찮다'는 뜻은 결코 아니에요.
둘 다 잘못일 수 있지만, 그 무게가 같지 않다는 게 톰슨의 요점이에요.
톰슨은 결과가 같아 보여도 내가 직접 해치는 행위와 벌어지는 일을 막지 않는 방관은 도덕적으로 다르다고 봤어요.
트롤리 문제는 손잡이를 당기는 일과 사람을 직접 죽이는 일이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는 죽이기와 살려 주기를 그만두기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보여 줘요.
결과만 세는 계산으로는 놓치는 무게가 우리 도덕 감각 안에 분명히 있다는 것, 그게 톰슨이 남긴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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