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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필리파 풋은 '좋은 나무', '좋은 늑대'를 말할 때처럼 사람의 좋음도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제대로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기준으로 따질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정직이나 용기 같은 덕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에요.
좋은 사과나무를 떠올려 볼까요.
뿌리가 땅을 단단히 붙잡고, 잎이 병들지 않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나무를 우리는 '좋은 나무'라고 불러요.
여기엔 다툴 게 별로 없어요.
나무가 나무로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반대로 뿌리가 약하고 잎이 마른 나무는 '나쁜 나무', 정확히는 '결함이 있는 나무'예요.
필리파 풋은 사람의 좋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이걸 자연적 선(natural goodness)이라고 불러요.
늑대가 무리와 협력해야 잘 사는 늑대이듯, 사람은 정직하고 용감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사람으로서 잘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즉 덕은 '착해 보이려는 장식'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번성하는 데 실제로 필요한 성질이라는 이야기죠.
풋은 이 생각을 2001년 책 『자연적 선(Natural Goodness)』으로 정리했고, 뿌리는 멀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두고 있어요.
풋이 활동하던 20세기 중반, 많은 철학자는 '좋다', '나쁘다' 같은 말이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일 뿐이라고 봤어요.
이걸 비인지주의라고 해요.
경기장에서 우리 편에 '와!' 하고 상대편에 '야유'를 보내듯, '이건 나쁜 짓이야'도 결국 '나는 싫어'라는 야유와 같다는 거예요.
이 생각은 흄이 던진 존재와 당위의 문제, 그러니까 '~이다'에서 '~해야 한다'를 끌어낼 수 없다는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풋은 여기에 반대했어요.
'비겁함', '잔인함' 같은 말을 보세요.
이런 말은 어떤 행동인지(사실)와 그게 나쁘다는 평가를 한 덩어리로 담고 있어요.
사실과 가치를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거죠.
그녀는 도덕 판단도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앎'의 문제라고 봤어요.
이 관점을 다듬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동료 철학자 앤스컴이었고, 풋은 그녀에 대해 "I learned everything from her"(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필리파 풋(1920~2010)은 영국의 윤리학자예요.
공교롭게도 자신의 90번째 생일에 세상을 떠났어요.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에서 철학·정치학·경제학을 최우등으로 마쳤고, 평생 이 학교와 인연을 이어갔어요.
외할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라는 점도 흥미롭죠.
종교는 없는 무신론자였고요.
한 가지 짚고 갈 오해가 있어요.
풋을 구호단체 옥스팜의 창립자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그녀는 옥스팜이 세워지고 약 6년 뒤에 합류했을 뿐이에요.
풋 하면 트롤리 문제를 먼저 떠올리는 분도 많아요.
폭주하는 전차 앞에서 한 명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구할지 묻는 유명한 사고실험이죠.
다만 이건 풋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주디스 자비스 톰슨과 함께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이 문제는 '어려운 선택'을 다루는 도구일 뿐, 자연적 선의 결론 그 자체는 아니에요.
풋의 생각도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어요.
초기 논문 '도덕적 신념'에서는 용기·절제·정의 같은 덕이 대개 그 사람 자신에게 좋다고 봤어요.
그런데 15년 뒤 '가언명령 체계로서의 도덕'에서는 정의와 자애의 합리성이 개인의 우연한 동기에 달려 있다며 입장을 뒤집기도 했죠.
이때 남긴 말이 "we are not conscripts in the army of virtue, but volunteers"(우리는 덕이라는 군대의 징집병이 아니라 지원병이다)예요.
이렇게 스스로 의심하고 고쳐 가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다다른 자리가 바로 '자연적 선'이었어요.
자연적 선은 도덕을 '누가 정한 규칙'이나 '그냥 내 기분'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는 조건으로 바라보게 해줘요.
왜 남을 속이면 안 되냐고 물을 때, '들키니까' 대신 '사람다운 삶이 그런 성질 위에서만 튼튼히 서기 때문'이라고 답할 길을 열어주는 셈이죠.
좋은 나무가 뿌리로 서듯 말이에요.
필리파 풋의 자연적 선은 사람의 좋음을 '좋은 나무', '좋은 늑대'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자는 제안이에요.
덕은 취향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라는 거죠.
도덕을 감정으로 축소하던 흐름에 맞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되살렸고, 트롤리 문제로도 이름을 남겼지만 그건 함께 만든 사고실험일 뿐이에요.
스스로 입장을 뒤집으며 오래 고민한 끝에 다다른 결론, 그것이 자연적 선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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