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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필리파 풋이 말한 '덕과 악덕'은 용기·절제·정의 같은 좋은 성품이 그것을 지닌 사람 자신에게 대체로 이로운 것이라는 뜻이에요. 착하게 사는 건 손해라는 통념과 달리, 덕은 삶을 잘 꾸려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라는 거죠.
요리를 잘하는 손, 자전거를 잘 타는 몸을 떠올려 보세요.
오래 쓰다 보면 몸에 밴 좋은 습관이 생기죠.
성품에도 그런 게 있어요.
용기, 절제, 정의감처럼 사람을 잘 살게 돕는 좋은 성품을 '덕(virtue)'이라고 불러요.
반대로 비겁함, 탐욕, 잔인함처럼 삶을 망치는 나쁜 성품을 '악덕(vice)'이라고 하고요.
영국 철학자 필리파 풋(1920~2010)은 1978년에 『덕과 악덕(Virtues and Vices)』이라는 책을 펴내며 바로 이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어요.
그녀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덕은 남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그걸 지닌 사람 자신에게도 좋다는 것.
착함이 곧 손해라는 흔한 생각을 뒤집는 이야기죠.
풋은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평생 그곳과 인연을 이어간 학자예요.
그녀가 활동하던 1950~60년대에는 도덕을 그저 감정 표현이나 취향쯤으로 보는 흐름이 강했어요.
풋은 여기에 맞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되살리려 했어요.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동료 철학자 앤스컴이에요.
풋은 그녀에 대해 "I learned every thing from her"(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걸 배웠다)라고 말했을 정도예요.
오늘날 풋은 '덕 윤리학의 부활'을 이끈 사람 중 하나로 꼽혀요.
규칙을 지켰느냐, 결과가 좋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묻는 윤리학이죠.
풋 시대의 반대편에는 '비인지주의'라는 입장이 있었어요.
좋다, 나쁘다 같은 도덕 판단은 참·거짓을 따질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느낌의 표현이라는 생각이에요.
이들은 '좋음/나쁨' 같은 얇은(thin) 개념과 '비겁함/잔인함' 같은 두꺼운(thick) 개념을 갈라놓고, 사실과 가치는 별개라고 봤어요.
풋은 이 구분을 반박했어요.
'잔인하다'는 말은 어떤 사람인지 사실을 짚으면서 동시에 나쁘다는 평가를 담고 있잖아요.
사실과 가치가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도덕 판단도 참인지 거짓인지 따질 수 있다고 봤어요.
초기 논문 '도덕적 신념(Moral Beliefs)'에서 풋은 용기·절제·정의 같은 덕이 대체로 그 주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약 15년 뒤 '가언명령 체계로서의 도덕'이라는 논문에서 정의와 자애에 관해서는 입장을 뒤집었어요.
이 덕들이 합리적인지는 그 사람이 우연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 거죠.
이때 나온 유명한 표현이 "we are not conscripts in the army of virtue, but volunteers"(우리는 덕의 군대에 징집된 병사가 아니라 자원한 지원병이다)예요.
덕을 억지로 강요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택한다는 뜻이에요.
다만 그 선택이 헛되지 않다는 것도 그녀는 봤어요.
레닌그라드 포위 시절 시민들이 도시를 지킨 헌신을 두고, 그들 스스로 그게 '우연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고 적었죠.
풋은 '트롤리 문제'로도 유명해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다섯 명을 향해 달릴 때, 선로를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키는 게 옳은가를 묻는 사고 실험이죠.
다만 이건 풋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주디스 자비스 톰슨과 함께 다듬은 논의예요.
또 하나 자주 도는 오해가 있어요.
풋이 구호단체 옥스팜을 세웠다는 이야기인데, 사실이 아니에요.
그녀는 옥스팜이 만들어지고 약 6년 뒤에 합류했을 뿐이에요.
필리파 풋의 '덕과 악덕'은 착함을 손해가 아니라 능력으로 다시 본 이야기예요.
용기와 절제 같은 좋은 성품은 남을 위한 희생이기 전에, 그걸 지닌 사람 자신이 잘 살게 돕는 힘이라는 거죠.
도덕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고, 우리는 덕을 강요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지원한다는 것, 풋은 이 두 가지를 평생 붙들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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