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도덕적 자연주의는 '좋다·나쁘다'가 사람 마음 밖 세계의 사실에 뿌리를 둔다는 생각이에요. 튼튼한 뿌리가 좋은 나무를 만들듯, 용기나 정직 같은 덕이 사람이 잘 사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식물을 키워 본 적 있나요?
좋은 화분과 나쁜 화분을 우리는 취향으로 정하지 않아요.
뿌리가 썩었으면 나쁜 상태, 잎이 튼튼하면 좋은 상태예요.
식물에게 무엇이 좋은지는 '그 식물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가'라는 사실에 딱 붙어 있죠.
영국 철학자 필리파 풋(Philippa Foot, 1920년부터 2010년까지)은 사람의 도덕도 이와 비슷하다고 봤어요.
'착한 게 좋다'는 말이 그냥 내 기분이나 사회의 유행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가 잘 살아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실에 뿌리를 둔다는 거예요.
이 입장을 도덕적 자연주의(moral naturalism)라고 불러요.
풋은 이 생각을 옛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길어 올렸어요.
풋이 활동하던 20세기 중반 옥스퍼드에는 강력한 반대 진영이 있었어요.
비인지주의(non-cognitivism)라는 입장인데, '좋다·나쁘다'는 참도 거짓도 아니고 그저 감정을 드러낼 뿐이라는 주장이에요.
"도둑질은 나쁘다"는 말이 사실 진술이 아니라 "도둑질, 우웩!" 같은 야유일 뿐이라는 거죠.
에이어, 스티븐슨, 헤어 같은 철학자들이 이렇게 봤어요.
풋은 여기에 정면으로 맞섰어요.
도덕 판단도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앎'의 문제라고요.
그녀는 '얇은' 말(좋다·나쁘다·옳다·그르다)과 '두꺼운' 말(비겁하다·잔인하다·탐욕스럽다)을 구별했어요.
'잔인하다'는 말을 떠올려 보세요.
이건 단순한 야유가 아니라, 남을 괴롭혀 놓고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이미 담고 있어요.
사실과 가치가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초기 논문 '도덕적 신념(Moral Beliefs)'에서 풋은 대담한 주장을 폈어요.
용기·절제·정의 같은 전통적 덕목은 대체로 그것을 지닌 사람 자신에게 좋다는 거예요.
정직한 사람은 거짓말이 들통날까 조마조마할 일이 없고, 절제하는 사람은 몸과 관계를 망치지 않죠.
덕은 나를 희생시키는 족쇄가 아니라 잘 사는 데 필요한 도구라는 그림이에요.
풋의 스승 격인 앤스컴(G. E. M. Anscombe)에게 배운 바가 컸어요.
풋은 그녀에 대해 "I learned every thing from her"(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다)라고 말했을 정도예요.
앤스컴에게서 비트겐슈타인의 분석 방법과 새로운 도덕적 시각을 얻었죠.
재미있는 건 풋이 나중에 자기 주장을 일부 뒤집었다는 점이에요.
약 15년 뒤 논문 '가언명령 체계로서의 도덕(Morality as a System of Hypothetical Imperatives)'에서, 정의와 자애(benevolence)의 합리성은 그 사람이 우연히 어떤 동기를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봤어요.
도덕이 누구에게나 무조건 명령하는 게 아니라, 그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걸려 있다는 거죠.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we are not conscripts in the army of virtue, but volunteers"(우리는 덕이라는 군대에 징집된 병사가 아니라 지원병이다)예요.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니라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는 뜻이에요.
초기의 자연주의와 이 입장 사이의 긴장은 풋이 평생 씨름한 문제였어요.
풋의 이름을 들으면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를 떠올리는 분이 많아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다섯 명을 향해 달릴 때, 방향을 틀어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느냐는 그 유명한 딜레마죠.
다만 두 가지는 짚고 가요.
이 문제는 풋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주디스 자비스 톰슨과 함께 고안한 것으로 정리돼요.
또 흔한 오해와 달리 풋은 구호 단체 옥스팜(Oxfam)의 창립자가 아니에요.
설립 약 6년 뒤에 합류했을 뿐이에요.
트롤리 문제는 풋 사상의 화려한 겉모습이지만, 그 밑에는 늘 '무엇이 사람에게 좋은가'를 사실처럼 따지려는 자연주의가 흐르고 있었어요.
이 뿌리는 여든한 살에 펴낸 책 『Natural Goodness』(자연적 좋음, 2001년)에서 가장 무르익은 모습으로 나타나요.
필리파 풋의 도덕적 자연주의는 '좋다·나쁘다'가 취향이나 감정이 아니라, 사람이 잘 사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실에 뿌리를 둔다는 생각이에요.
좋은 나무를 뿌리로 알아보듯, 덕은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 대체로 좋기 때문에 좋다고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녀는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비인지주의에 맞서 도덕을 '앎'의 자리로 되돌렸고, 트롤리 문제와 덕 윤리의 부활을 이끌었어요.
도덕이 하늘에서 내려온 명령이 아니라 우리 삶의 조건에서 자라난다는 것, 이게 풋이 평생 붙들었던 생각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