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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톰슨은 달리는 전차의 방향을 틀어 한 명을 죽게 두는 것과, 사람을 직접 밀어 죽게 하는 것을 우리가 전혀 다르게 느낀다는 데 주목했어요. 똑같이 '한 명을 희생해 다섯을 구하는' 상황인데도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갈리는 이유를 물은 거예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 한 대가 선로를 달려요.
이대로 가면 앞쪽에 묶인 다섯 사람을 그대로 치고 지나가요.
그런데 마침 여러분 손에 선로 방향을 바꾸는 레버가 있어요.
레버를 당기면 전차는 옆 선로로 빠지고, 대신 거기 서 있던 한 사람이 죽어요.
다섯을 살리려고 한 명을 희생시키는 레버, 당기시겠어요?
많은 사람이 "당기겠다"고 답해요.
다섯보다 하나가 적으니까요.
이 상황이 바로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예요.
브레이크 고장 난 전차, 다섯과 하나, 레버 하나.
겉보기엔 간단한 뺄셈 같지요.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요.
이번엔 레버가 없어요.
여러분은 선로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 서 있고, 바로 옆에는 아주 덩치 큰 사람이 한 명 있어요.
이 사람을 밀어 선로로 떨어뜨리면 그 몸에 걸려 전차가 멈추고, 앞쪽 다섯 사람이 살아요.
숫자는 똑같아요.
한 명을 희생해 다섯을 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엔 "밀겠다"는 사람이 확 줄어요.
이상하지요.
산수로는 똑같은데 마음은 정반대로 움직여요.
톰슨이 파고든 지점이 바로 이 틈이에요.
레버를 당기는 건 괜찮게 느껴지고, 사람을 미는 건 왜 끔찍하게 느껴질까요?
둘 다 결국 한 명을 죽여 다섯을 살리는데 말이에요.
이 어긋남을 그냥 '기분 탓'으로 넘기지 않고, 그 안에 도덕적으로 진짜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따진 게 톰슨의 작업이에요.
주디스 자비스 톰슨(Judith Jarvis Thomson)은 1929년 뉴욕에서 태어나 2020년에 91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 철학자예요.
경력의 대부분을 MIT에서 보내며 윤리학과 형이상학을 연구했어요.
먼저 짚을 게 있어요.
트롤리 이야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톰슨이 아니라 영국 철학자 필리파 풋(Philippa Foot)이에요.
톰슨은 이 문제에 '트롤리 문제'라는 이름을 붙이고, 육교 버전을 더하고, 관련 논의를 크게 넓힌 사람이에요.
1976년 논문 'Killing, Letting Die, and the Trolley Problem'과 1985년 예일 로 저널에 실린 'The Trolley Problem'이 그 무대예요.
톰슨의 대답을 아주 쉽게 옮기면 이래요.
레버를 당길 때 여러분은 이미 굴러오는 위협, 즉 전차의 방향만 다른 쪽으로 돌려요.
한 사람의 죽음은 그 방향 전환에서 딸려 나온 결과일 뿐이에요.
반면 육교에서는 그 사람의 몸 자체를 전차를 멈추는 '도구'로 써요.
그가 죽어야만 계획이 성립하는 거예요.
톰슨은 결과의 숫자만 세는 관점(결과주의)에 반대하면서,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일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의무론(deontology)적 감각을 진지하게 다뤘어요.
톰슨을 유명하게 만든 사고실험이 하나 더 있어요.
1971년 논문 'A Defense of Abortion'에 나오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예요.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여러분의 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순환계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9개월 동안 여러분의 몸을 빌려줘야 해요.
물론 여러분은 동의한 적이 없어요.
톰슨은 여기서 재치 있는 수를 둬요.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살 권리를 가진 어엿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런데도, 내 몸을 9개월간 내줄 의무까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고 말해요.
낙태 논쟁에 빗대자면, 태아가 사람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 뒤에도 여성의 신체적 자율성이 우선할 수 있다는 거예요.
초점을 '태아의 권리'에서 '임신한 사람의 권리'로 옮긴 이 논증은 낙태를 이야기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어요.
트롤리와 육교 딜레마는 '다섯이냐 하나냐'라는 뺄셈 문제가 아니에요.
숫자가 똑같은데도 마음이 갈리는 이유를 묻는 문제예요.
위협의 방향을 트는 것과 사람을 직접 미는 것 사이에 진짜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톰슨은 그 미세한 틈을 끝까지 들여다봤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도 결국 같은 태도예요.
큰 원칙을 외치는 대신,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직관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 안의 논리를 찾아낸 거예요.
다음에 '한 명이냐 다섯이냐'라는 물음을 만나면, 답을 정하기 전에 '내가 지금 방향을 트는 걸까, 사람을 미는 걸까'를 먼저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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