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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좋은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나쁜 결과는, 그 나쁜 결과를 일부러 노리고 저지른 행동과 도덕적으로 다르다는 원리예요. 해악을 목적이나 수단으로 삼았느냐, 아니면 예견만 하고 피할 수 없어 감수했느냐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갈림길이 됩니다.
독한 진통제를 떠올려 볼게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환자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의사가 통증을 없애려고 강한 약을 놓습니다.
그런데 그 약은 통증을 줄이는 대신 남은 생명을 조금 앞당길 수 있어요.
의사가 노린 건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고, 생명이 짧아지는 건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부작용이에요.
이건 환자를 죽이려고 일부러 약을 과다하게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우리는 느낍니다.
바로 이 '느낌'을 원리로 정리한 것이 이중결과의 원리(doctrine of double effect)예요.
하나의 행동에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함께 딸려 올 때, 나쁜 결과를 목적이나 수단으로 삼았는지, 아니면 예견은 했지만 피할 수 없어 감수했는지를 따집니다.
같은 나쁜 결과라도 앞의 경우는 그르고, 뒤의 경우는 허용될 수 있다는 거예요.
마음속으로 무엇을 겨냥했느냐에 따라 그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가 달라진다는 생각입니다.
필리파 풋(Philippa Foot)은 1920년부터 2010년까지 산 영국 철학자예요.
90번째 생일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에서 오래 가르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덕 윤리'를 되살린 사람으로 꼽히고, 스승처럼 여긴 앤스컴에 대해 "I learned every thing from her"(나는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풋이 이중결과의 원리를 유명하게 만든 무대가 바로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예요.
이 유명한 사고 실험은 풋이 주디스 자비스 톰슨(Judith Jarvis Thomson)과 함께 고안한 것으로 인정받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다섯 사람을 향해 달려와요.
당신이 선로를 바꾸면 다섯은 살지만 다른 선로의 한 사람이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로를 바꾸는 건 그래도 낫다'고 답해요.
그런데 다섯을 살리려고 다리 위에서 한 사람을 밀어 전차를 막는 경우는 대부분 '안 된다'고 느낍니다.
죽는 사람 수는 똑같이 하나인데 왜 판단이 갈릴까요?
차이는 그 한 사람의 죽음을 내가 수단으로 썼느냐에 있어요.
선로를 바꿀 때 한 사람의 죽음은 내 목적이 아니라 옆으로 튄 부작용이에요.
그가 거기 없었다면 오히려 다행이죠.
반대로 사람을 밀어 전차를 막을 때는, 그 사람의 몸이 전차를 세우는 도구가 됩니다.
그가 죽어 줘야 내 계획이 성립해요.
앞은 '예견한 해악', 뒤는 '의도한 해악'입니다.
| 구분 | 의도한 해악 | 예견한 해악 |
|---|---|---|
| 나쁜 결과의 위치 | 목적이거나 목적을 위한 수단 | 목적에 딸려 오는 부작용 |
| 그 사람이 없었다면 | 계획이 어그러진다 | 오히려 잘된 일이다 |
| 대표 예 | 다리에서 사람을 밀기 | 선로를 바꾸기 |
| 도덕적 평가 | 허용되기 어렵다 | 허용될 수 있다 |
표로 보면 분명해져요.
결과주의는 '죽은 사람이 몇 명이냐'만 세지만, 이중결과의 원리는 '무엇을 겨냥했느냐'까지 봅니다.
그래서 풋은 나쁜 결과의 숫자만으로 옳고 그름이 정해진다는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있었어요.
이 원리는 교과서 밖에서도 살아 움직여요.
앞서 본 말기 환자의 진통제, 응급 수술에서 산모와 아이 중 하나를 지켜야 하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피하도록 짜는 규칙에도 '의도한 해악과 예견한 해악은 다르다'는 물음이 그대로 등장해요.
물론 반론도 있어요.
결과가 같은데 마음속 겨냥만으로 옳고 그름이 갈리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거예요.
죽는 사람에게는 어느 쪽이든 죽음이니까요.
풋 자신도 이 원리를 만능 열쇠로 내세우기보다,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도덕 감각의 결을 설명하는 도구로 다뤘습니다.
답을 딱 정해 주기보다, 우리가 왜 두 경우를 다르게 느끼는지를 또렷하게 비춰 주는 거울에 가깝지요.
이중결과의 원리는 좋은 목적에 딸려 오는 나쁜 결과와, 나쁜 결과를 일부러 노린 행동을 갈라 봅니다.
핵심은 해악을 수단이나 목적으로 삼았는지, 예견만 하고 감수했는지예요.
선로를 바꾸는 것과 사람을 미는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필리파 풋은 트롤리 문제로 이 물음을 널리 알렸고, 결과의 숫자만 세는 계산법에 '무엇을 겨냥했는가'라는 질문을 되돌려 놓았습니다.
다음에 '어쩔 수 없었어'와 '그러려고 했어' 사이에서 망설일 때, 이 원리를 떠올려 보면 내 마음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었는지 조금 더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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