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5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길버트 라일은 마음을 몸과 따로 떨어진 유령 같은 존재로 본 데카르트의 생각을 '범주를 헷갈린 실수'라고 봤어요. 마음은 몸 안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똑똑하게 행동하는 방식 그 자체라는 거예요.

혹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 들어봤나요?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한 말이에요.
데카르트는 사람이 두 가지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만질 수 있는 몸, 다른 하나는 만질 수 없는 마음이죠.
몸은 기계처럼 움직이고, 마음은 그 몸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운전기사 같은 거예요.
이렇게 마음과 몸을 둘로 나누는 생각을 '이원론'이라고 불러요.
그 뒤로 300년 가까이 많은 사람이 이 생각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1949년, 영국 철학자 길버트 라일이 책 한 권에서 "잠깐, 그거 좀 이상한데요?"라며 손을 들었어요.

라일은 데카르트가 큰 착각을 했다고 봤어요.
그 착각에 '범주 오류'라는 이름을 붙였죠.
어려운 말 같지만 예를 들면 금방 이해돼요.
친구가 처음으로 큰 대학교에 놀러 왔다고 해볼게요.
도서관도 보고, 운동장도 보고, 강의실도 보고, 오가는 학생들도 봤어요.
그런데 친구가 이렇게 물어요. "건물은 다 봤는데, 그래서 '대학교'는 대체 어디 있어?"
조금 이상하죠?
대학교는 건물 옆에 따로 서 있는 또 하나의 건물이 아니에요.
도서관과 강의실과 사람들이 한데 모여 돌아가는 그 모습 전체가 바로 대학교예요.
친구는 '대학교'를 건물과 같은 종류라고 착각한 거죠.
이게 바로 범주 오류예요.
라일이 보기에 데카르트는 마음을 두고 똑같은 실수를 했어요.
마음을 몸 옆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물건'처럼 찾으려 한 거예요.

라일은 데카르트의 생각에 재미있는 별명을 붙였어요.
바로 '기계 속의 유령'이에요.
몸이라는 기계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마음이 들어앉아 조종한다고 본다는 뜻이죠.
라일은 이 그림이 잘못됐다고 했어요.
우리 몸 어디를 열어 봐도 그런 유령은 없으니까요.
두 사람의 생각을 한눈에 비교하면 이래요.
| 질문 | 데카르트의 답 | 라일의 답 |
|---|---|---|
| 마음이란? | 몸과 다른 특별한 물질 | 따로 있는 물건이 아니라 행동하는 방식 |
| 몸과의 관계 | 마음이 몸을 조종함 | 마음과 몸을 둘로 나눌 수 없음 |
| 그 생각의 정체는? | 당연한 진리 | 범주를 헷갈린 실수 |

그럼 라일은 마음을 뭐라고 봤을까요?
그는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이걸 '일상언어 분석'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저 친구는 똑똑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친구 머릿속에 숨은 유령을 본 게 아니에요.
어려운 문제를 척척 푸는 모습, 실수해도 금방 고치는 모습, 즉 그 친구가 행동하는 방식을 보고 똑똑하다고 말하는 거죠. '안다'거나 '용감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래서 라일은 마음이 몸 속에 따로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행동하는 그 모습 안에 이미 다 드러나 있다고 봤어요.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게 머릿속 어딘가에 든 비밀이 아니라 실제로 페달을 밟고 균형을 잡는 일인 것처럼요.

데카르트는 사람을 몸과 마음, 둘로 나누고 마음을 몸 속 운전기사처럼 봤어요.
길버트 라일은 그것이 '대학교가 어디 있냐'고 묻는 것과 같은 범주 오류라고 했고, 그 생각에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별명을 붙였죠.
라일에게 마음은 따로 찾아낼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똑똑하게 또 용감하게 행동하는 방식 그 자체였어요.
다음에 누가 "마음이 어디 있어?"라고 물으면, 한번 라일처럼 되물어 봐도 좋겠어요. "마음은 물건이 아니라 네가 하는 행동 속에 있는 거 아닐까?"라고요.
5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