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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방법적 회의는 참된 지식의 바닥을 찾으려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을 일부러 전부 치워 보는 방법이에요. 감각도 꿈도 무너뜨려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만은 끝내 지워지지 않아요.
책장이 오래된 물건으로 뒤죽박죽이면, 진짜 필요한 걸 찾으려고 일단 전부 바닥에 쏟아 놓고 하나씩 되돌려 놓곤 하죠.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년부터 1650년까지 살았어요)가 지식에 한 일이 딱 이거예요.
조금이라도 의심할 구석이 있는 생각은 전부 "일단 거짓"이라 치고 밀어냈어요.
이렇게 일부러, 방법 삼아 의심하는 걸 라틴어로 dubitatio methodica, 곧 방법적 회의라고 불러요.
핵심은 '방법'이라는 말에 있어요.
세상만사 못 믿겠다며 손을 놓는 게 아니에요.
무너뜨릴 수 있는 걸 다 무너뜨린 뒤에도 끝까지 안 무너지는 단단한 바닥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거죠.
확실한 지식의 주춧돌 하나를 찾으려고 나머지를 잠깐 다 치워 보는 청소인 셈이에요.
데카르트는 예수회 학교에서 여러 해 공부하며 당대의 학문을 배웠지만, 배운 지식들이 서로 어긋나고 확실한 기초가 없다는 데 답답함을 느꼈어요.
모래 위에 벽돌을 아무리 쌓아도 무너지듯이, 밑돌이 흔들리면 그 위의 지식도 다 흔들린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그는 《방법서설》(1637년)에서 스스로 지킬 규칙의 첫째를 이렇게 적었어요.
"Le premier était de ne recevoir jamais aucune chose pour vraie que je ne la connusse évidemment être telle."
풀면 "명증하게 참임을 알지 못하는 어떤 것도 결코 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조금이라도 의심할 틈이 보이면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아주 깐깐한 검문소를 세운 거죠.
데카르트의 의심은 점점 세게 단계를 밟아 올라가요.
마치 다리가 튼튼한지 보려고 점점 무거운 짐을 실어 보는 것과 같아요.
첫째, 감각을 의심해요.
물에 담근 막대기가 휘어 보이듯, 눈과 귀는 우리를 자주 속이니 감각이 준 정보는 못 믿겠다고 치워요.
둘째, 꿈을 의심해요.
꿈속에서는 너무나 생생해서 그게 꿈인 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하죠?
셋째, 가장 센 의심으로 '나를 속이려고 작정한 강력한 악한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요.
이 존재가 하늘도, 땅도, 심지어 하나 더하기 하나 같은 계산까지 속이도록 내 머릿속을 조작한다면요?
여기까지 밀어붙이면 거의 모든 게 무너져요.
그런데 딱 하나가 남아요.
이렇게 몽땅 의심하는 동안에도,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어요.
속으려면 일단 속을 '내가' 있어야 하니까요.
의심이라는 큰불이 다 태우고도 못 태운 재 한 줌, 그게 '생각하며 의심하는 나'예요.
이 지점에서 그 유명한 결론이 나오지만,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따로 풀게요.
의심한다니 옛날 회의주의자와 같아 보이지만, 목적이 정반대예요.
표로 보면 쉬워요.
| 구분 | 고대 회의주의 |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
|---|---|---|
| 의심의 목적 | 의심 그 자체, 판단 보류 | 확실한 기초를 찾기 위한 도구 |
| 도착점 | "결국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 | "의심할 수 없는 하나를 찾았다" |
| 의심의 성격 | 계속 머무는 태도 | 잠깐 거쳐 가는 청소 과정 |
회의주의가 의심에 눌러앉는다면, 데카르트의 의심은 통과하기 위한 문이에요.
다 의심해 봤더니 오히려 못 의심할 게 딱 하나 드러났고, 그 하나를 새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 거죠.
그래서 방법적 회의는 '무너뜨리기'가 아니라 '골라내기'에 가까워요.
방법적 회의는 400년 전 이야기지만 쓸모는 지금도 그대로예요.
뉴스나 소문을 접할 때 "이거 정말 확실한가?"라고 한 번 걸러 보는 습관이 바로 작은 방법적 회의예요.
남이 준 답을 그냥 받아 적는 대신, 스스로 확인되는 것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태도가 중요해요.
데카르트가 대단한 건 의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심을 오히려 진리로 가는 사다리로 뒤집어 썼다는 점이에요.
방법적 회의는 확실한 지식의 바닥을 찾으려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을 일부러 전부 치워 보는 데카르트의 방법이에요.
감각과 꿈, 심지어 나를 속이는 악한 존재까지 가정해 모든 걸 흔들어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만은 지워지지 않아요.
회의주의가 의심에 머무는 것과 달리, 이 의심은 단단한 출발점 하나를 골라내려고 잠깐 거쳐 가는 청소였다는 것, 그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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