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26년 가을, 스무 살 밀은 자기 인생이 통째로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딱 하나였어요.
"내가 평생 추구해온 모든 사회 개혁이 다 이뤄진다 해도, 나는 행복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이 '아니다'라는 걸 알아버렸어요.
이건 오늘날로 치면 이런 감각이에요.
10년간 수능 하나만 보며 살았는데, 막상 합격한 날 아침에 "그래서 뭐?"라는 공허가 밀려오는 것.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텅 빈 감각뿐이었고, 밀은 깊은 우울증에 빠졌어요.
그런데 그를 끌어낸 건 철학책이 아니었어요.
논리도, 아버지의 훈계도 아닌 워즈워스의 시 한 권이었어요.
워즈워스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담아낸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에요.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하게 '이성 기계'로 길러진 인간이, 결국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살아난 거예요.
그리고 밀은 평생 이 역설을 이해하려 했어요.

밀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요.
친구도 없었어요.
그의 동급생은 플라톤이었고, 담임은 아버지였어요.
아버지 제임스 밀은 철학자 벤담의 제자였어요.
벤담은 공리주의를 만든 사람인데, 공리주의란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행복해지는 것이 옳다"는 사상이에요.
제임스 밀은 이 사상을 완벽하게 체화한 아들을 직접 만들기로 했어요.
세 살에 그리스어, 여덟 살에 라틴어, 열두 살에 논리학, 열세 살에 정치경제학.
모두 학교가 아닌 아버지에게 직접 배웠어요.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했는데, 그건 휴식이 아니었어요.
헤로도토스(고대 그리스의 역사가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역사서를 남긴 인물)의 전날 읽은 내용을 요약해서 보고해야 했거든요.
또래 친구를 사귀는 것도 금지였어요.
결과는 역설적이었어요.
'최고의 공리주의자'를 만들려는 교육이, 정작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잊어버린 인간을 만들어냈어요.
밀이 스무 살에 무너진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어요.

1830년, 밀은 한 여자를 만났어요.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고, 그는 그녀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21년을 기다렸어요.
그녀의 이름은 해리엇 테일러였어요.
약사 존 테일러의 아내였고, 두 아이의 엄마였어요.
밀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둘 다 스물세 살이었어요.
그 뒤 21년간 두 사람은 편지와 대화로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갔어요.
당시 사회로선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래도 둘 다 관계를 끊지 않았어요.
1849년 해리엇의 남편 존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1851년,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했어요.
하지만 행복은 짧았어요.
결혼한 지 7년 뒤인 1858년, 해리엇은 폐결핵으로 프랑스 아비뇽에서 숨을 거뒀어요.
밀은 그 뒤 해리엇의 묘지가 보이는 곳에 집을 샀어요.
그리고 남은 15년을 그 집에서 살았고, 결국 그녀의 묘지 옆에 묻혔어요.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어요.
그해 출간된 『자유론(On Liberty)』은 오늘날 정치 철학의 고전으로 꼽혀요.
자유론이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를 따진 책인데, 밀은 이 책을 자신과 해리엇의 공저라고 선언했어요.
가장 합리적이라 불리는 철학자가 가장 비합리적인 사랑을 했고, 자기 대표작의 저자 자리를 죽은 아내와 나눴어요.

1866년 5월 20일, 밀이 영국 하원에서 "여자도 투표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한 그 순간, 그의 정치 인생은 끝났어요.
1865년 밀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지역구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됐어요.
그리고 이듬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서 여성 투표권 수정안을 발의했어요.
표결 결과는 196 대 73으로 부결됐어요.
1868년 선거에서 밀은 낙선했어요.
영국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은 건 1918년이에요.
밀이 그 법안을 낸 건 그보다 52년 앞선 일이었어요.
오늘로 치면 2078년에야 당연해질 법안을 지금 혼자 의회에 들고 나간 것과 같아요.
같은 해 밀은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을 출간했어요.
여성이 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진 책으로, 당시로선 거의 금기에 가까운 내용이었어요.
그는 자기 의석이 사라질 걸 알면서도 말했어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회의실에서 혼자 "이건 차별입니다"라고 말한 뒤의 그 침묵을 감당한 거예요.
52년 뒤 영국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소에 들어선 날, 그들 중 누가 밀의 이름을 알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