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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20년, 베를린대학 신임 강사로 부임한 32세의 쇼펜하우어는 첫 학기 강의 시간표를 짜면서 당대 유럽 철학계의 절대 강자 헤겔과 정확히 같은 시간 슬롯을 골랐어요.
우연이 아니었어요.
헤겔이 강의하는 오후 4시에서 5시, 그 한 시간을 그대로 집어넣었거든요.
결과는 참담했어요.
헤겔 강의실엔 200명이 몰렸고, 쇼펜하우어 강의실엔 5명이 앉아 있었어요.
신입 가수가 데뷔 무대를 BTS 콘서트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잡은 격이었죠.
한 학기 만에 강사직을 접었어요.
쇼펜하우어는 그 뒤로 평생 다시는 강단에 서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가 틀렸는지, 그건 30년이 지나서야 알 수 있는 이야기예요.
쇼펜하우어가 평생 직업 없이 글만 쓸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아버지 덕분이에요.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는 함부르크의 부유한 무역상이었는데, 1805년 창고 운하에서 익사했어요.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이었고, 그 유산이 아들에게는 평생 생계 걱정 없이 철학만 할 수 있는 안전망이 됐어요.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물이에요.
바이마르에서 독일 최고의 작가 괴테와 친하게 지내던 당대 베스트셀러 소설가였거든요.
아들이 아무도 읽지 않는 철학 책을 쓰는 동안, 어머니 책은 잘 팔렸어요.
그리고 1814년, 모자는 격렬하게 다퉜어요.
요한나가 아들을 계단에서 밀쳐 떨어뜨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 이후 두 사람은 요한나가 죽는 날까지 24년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어요.
동정(Mitleid)을 도덕의 유일한 토대라고 가르친 철학자가, 정작 자기 이웃을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렸어요.
동정이란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는 것, 그게 없으면 윤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쇼펜하우어의 핵심 주장이었거든요.
그런데 1821년, 그 철학자에게 재판이 열렸어요.
이웃 카롤리네 마르케라는 47세 재봉사가 쇼펜하우어 자택 복도에서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었어요.
화가 난 쇼펜하우어가 그녀를 계단으로 밀어냈고, 마르케는 부상을 입었어요.
소송에서 그는 졌고, 마르케가 살아 있는 동안 매년 연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어요.
그렇게 20년이 흘렀어요.
1842년 마르케가 사망했다는 통지가 오자, 쇼펜하우어는 그 통지서 위에 라틴어로 짧게 적었어요.
"Obit anus, abit onus." "노파가 죽으니, 짐도 떠난다."
동정을 도덕의 기초라고 쓴 사람의 메모치고는, 할 말이 없어지는 문장이에요.
30년간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있었어요.
쇼펜하우어가 30세에 완성한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1818년에 출간됐지만,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어요.
출판사는 남은 재고를 종이값이라도 건지려고 폐지업자에게 넘기는 걸 진지하게 고려했을 정도예요.
그런데 1851년, 상황이 뒤집어졌어요.
그간의 생각을 짧고 가볍게 묶은 에세이 모음 『여록과 보유』가 영국 평론지에서 호평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유럽 전체가 이 노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의 나이는 67세였어요.
남은 9년 동안 바그너는 그의 사상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고, 니체는 그를 읽고 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톨스토이와 프로이트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에게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끌어냈어요.
1860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유산을 1848년 혁명 진압 중 부상당한 프로이센 군인 지원 기금에 남겼어요.
30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영광이 고작 9년이었다는 게, 그의 어떤 철학적 문장보다 더 그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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