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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32년에 죽은 사람이, 21세기 런던대학교 이사회 회의록에 출석으로 기록돼 있어요.
이름은 제레미 벤담. 그는 죽기 전에 유언을 하나 남겼어요. 자기 시신을 해부학 강의에 쓴 뒤, 뼈대에 옷을 입히고 머리 위치에 밀랍 머리를 끼워서 영구 전시하라고요.
그 결과물이 오토 아이콘(auto-icon)이에요. 직역하면 '자기 자신을 본뜬 우상'. 런던대학교(UCL) 본관 유리장 안에 지금도 앉아 있어요.
그리고 UCL 공식 기록에는 가끔 이런 메모가 남아 있어요. "present but not voting." 출석했으나 투표하지 않음.
19세기 영국에서 시신을 박제로 만드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땅에 묻거나 태우는 것이 절대적 상식이던 시대에, 이 남자는 자기 몸을 가구처럼 만들어서 강의실에 두라고 명령했어요.
200년 전 죽은 사람의 실제 몸이 지금도 대학 건물 안에 앉아 있어요. 호러 영화 설정이 아니에요. 오늘의 이야기예요.
벤담은 자기 얼굴을 영원히 남기려 했지만, 그 얼굴은 사람들 손에서 굴러다녔어요.
오토 아이콘을 만들 때 진짜 머리도 보존하려 했어요. 방법은 마오리족의 건조법을 흉내 낸 것이었는데, 결과는 끔찍했어요. 피부가 검게 쪼그라들고 표정이 일그러진 그로테스크한 형태가 됐거든요.
그래서 UCL은 1850년대에 밀랍 머리를 새로 만들어 끼웠어요. 진짜 머리는 그의 두 발 사이 받침대에 따로 올려뒀어요.
그때부터가 문제였어요. 학생들이 이 머리를 꺼내 당구공처럼, 동전처럼 굴리며 놀기 시작했거든요.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요.
1975년에는 라이벌 학교인 킹스칼리지 런던 학생들이 아예 그 머리를 훔쳐서 100파운드 몸값을 요구했어요. UCL이 10파운드를 내고 되찾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결국 1990년대에 진짜 머리는 따로 잠긴 보관함 안으로 옮겨졌어요. 영원한 영광을 꿈꾼 박제가, 대학생들의 장난감이 됐어요.
오늘날 모든 감시 카메라의 사상적 기원은, 평생 단 한 채도 지어지지 못한 감옥이었어요.
1791년 벤담은 파놉티콘(Panopticon)을 설계했어요. 원형 감옥인데, 중앙에 감시탑을 두고 죄수 방을 빙 둘러놓는 구조예요. 감시탑 교도관 한 명이 모든 죄수를 동시에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지금 자기가 감시받는지 알 수 없어요.
핵심은 여기예요. "항상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실제로 감시하지 않을 때도 죄수들은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게 돼요. 감시하는 비용을 극적으로 줄이는 설계예요.
벤담은 이 감옥을 직접 짓겠다고 나섰어요. 이후 23년간 영국 의회와 정부를 설득하는 데 매달렸고, 자기 재산 약 2만 3천 파운드를 직접 투입했어요. 현재 가치로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이에요.
하지만 1813년 의회는 최종 거부했어요. 당시 조지 3세가 사적인 원한으로 이 사업을 가로막았다는 정황 기록도 남아 있어요.
벤담은 빈손이 됐어요. 자기 청사진이 단 한 채도 지어지지 못한 채 죽었어요.
그런데 200년 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이 설계를 다시 꺼냈어요. 그는 파놉티콘이 현대 사회 전체의 작동 원리라고 봤어요. 오늘날 CCTV, 콜센터 모니터링, 스마트워크 추적 프로그램까지 전부 이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요.
벤담의 감옥은 결국 지어졌어요. 다만 형태가 달랐을 뿐이에요. 도시 전체가 그 감옥이 됐어요.
벤담의 박제는 그의 가장 기괴한 행위가 아니라, 그의 가장 정직한 결론이었어요.
벤담의 핵심 사상은 단 하나예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어떤 행동이 옳은지 판단하는 기준이 단 하나라는 거예요. 그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행복을 주느냐.
이걸 공리주의(utilitarianism)라고 해요. 신의 명령도, 왕의 권위도, 조상의 전통도 기준이 아니에요. 오직 결과로만 옳고 그름을 따져요. 오늘날 복지 정책, 의료 자원 배분, 경제학의 논리 기반이 여기서 나왔어요.
그에게 시신도 자원이었어요. 사망 직전 그가 직접 쓴 논문 「오토 아이콘」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시신을 묻는 건 자원 낭비야. 박제로 만들어 강의실에 두면 후대의 해부학 교육과 사상적 영감에 쓰일 수 있잖아."
그리고 같은 논리로, 1789년에는 동물권의 기초도 놨어요. 당시 유럽에서 동물을 윤리적 고려 대상으로 보자는 건 거의 아무도 하지 않던 주장이었어요.
그는 이렇게 썼어요.
"문제는 그들이 사고할 수 있는가도, 말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고통받을 수 있는가다."
이 한 줄은 지금도 전 세계 동물권 운동의 출발점으로 인용돼요.
철학을 글로 쓰는 것과 그 철학대로 사는 건 다른 일이에요. 벤담은 자기 몸이 남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원칙을 놓지 않았어요. 지금도 UCL 유리장 안에서, 그는 회의 참석 중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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