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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탄잘리』에서 신은 하늘 높이 앉은 무서운 임금님이 아니라, 내 곁에서 함께 걷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 틈에 서 있는 가까운 존재예요. 그래서 타고르는 화려한 예배당이 아니라 일상과 낮은 자리에서 신을 만난다고 노래했어요.
멀리 있는 임금님에게 딱딱한 편지를 쓰는 대신, 옆집 친구에게 편하게 말을 거는 기분으로 신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떨까요?
『기탄잘리』의 신은 바로 그런 신이에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년부터 1941년까지 산 인도 시인)는 1913년 아시아 사람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요.
그 상을 안겨 준 시집이 바로 『기탄잘리』인데, 타고르가 직접 영어로 옮긴 제목 'Song Offerings'는 '노래로 바치는 헌사'라는 뜻이에요.
제목 그대로 이 시집은 신에게 노래를 바치는 형식으로 쓰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신은, 구름 위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을 무섭게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내 곁에서 함께 걷고 가장 낮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아주 가까운 존재예요.
이 가까움이 바로 '기탄잘리의 신성'의 핵심이에요.
보통 신이라고 하면 크고 무섭고, 나와는 멀리 떨어진 분을 떠올리기 쉬워요.
그런데 타고르의 노래 속 신은 오히려 나를 그리워하고, 나를 기다리고, 나와 만나고 싶어 하는 쪽이에요.
마치 오래 못 본 친구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그래서 『기탄잘리』에서 사람과 신의 관계는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관계로 그려져요.
이건 타고르 사상의 뿌리와 이어져 있어요.
중국어 위키백과는 타고르 사상을 '인신일체(人神一體)', 즉 사람과 신이 하나라는 생각과, '물아교융(人我交融)', 즉 나와 세상이 서로 스며 섞인다는 생각으로 설명해요.
신이 저 위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와 세상 만물 안에 이미 녹아 있다는 거예요.
타고르가 노래하는 신은 화려한 사원 안에만 있지 않아요.
오히려 땀 흘려 밭을 가는 농부 곁에, 길가의 가난한 사람들 틈에 함께 있어요.
신을 만나고 싶으면 눈을 하늘로 치켜뜨지 말고, 오히려 가장 낮은 곳으로 고개를 숙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생각은 타고르 자신의 경험과도 닿아 있어요.
그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 가곤 했는데, 『나의 회상』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There the sacred chanting resounds continually(그곳에서는 성스러운 찬송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예배자 무리 속에 낯선 이가 끼어들어도 사람들은 열렬히 반갑게 맞아 주었다고 해요.
성스러움이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인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흐른다는 걸 어릴 때부터 몸으로 느낀 셈이에요.
타고르가 갑자기 새로운 신을 만들어 낸 건 아니에요.
그의 시는 오래된 여러 물줄기가 모여 이루어졌어요.
아래로 정리해 볼게요.
| 뿌리 | 물려준 것 |
|---|---|
| 『우파니샤드』와 인도의 범신론 | 신과 만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 |
| 바이슈나바 시 전통 | 신을 사랑하는 연인처럼 노래하는 방식 |
| 카비르 등 박티·수피 신비주의 | 형식보다 마음으로 신과 만나기 |
| 바울 음유시인 랄론 샤의 민속 노래 | 길 위에서 부르는 소박한 신앙의 노래 |
특히 바울은 벵골 지방을 떠돌며 노래하던 음유시인들이에요.
거창한 교리 대신 단순한 노래로 신을 찾는 이들이었지요.
타고르는 이 소박한 노래의 정신을 시로 끌어올렸어요.
그래서 『기탄잘리』의 신성은 어려운 신학이 아니라,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다만 한 가지 기억할 점이 있어요.
1913년 노벨문학상은 1910년 벵골어 원작이 아니라, 타고르가 직접 영어로 옮긴 얇은 시선집에 대해 주어졌어요.
예이츠 같은 서양 문인은 이 영어 번역이 원작의 깊이를 다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답니다.
『기탄잘리』의 신성을 한마디로 묶으면 이래요.
타고르의 신은 하늘 위 무서운 임금님이 아니라, 나와 세상 만물 안에 녹아 있고 가장 낮은 사람들 곁에 함께 있는 가까운 존재예요.
그래서 신을 만나는 길은 화려한 사원이 아니라 일상과 노래 속에 있어요.
이 생각은 『우파니샤드』의 범신론과 바울 음유시인의 소박한 노래에서 자라났고, 그 덕분에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편안한 노래처럼 읽혀요.
다음에 이 시집을 만나면, 저 멀리가 아니라 바로 곁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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