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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타고르는 간디를 깊이 존경해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까지 지어 줬지만, 1934년 비하르 대지진을 두고 정면으로 부딪혔어요. 간디는 지진을 불가촉천민을 억압한 죄에 대한 업(業)의 응보라고 말했고, 타고르는 자연재해를 도덕과 이어 붙이면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이를 비판했습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1861년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1913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사상가예요.
그리고 우리가 '마하트마 간디'라고 부를 때 그 '마하트마', 곧 '위대한 영혼'이라는 이름을 간디에게 붙여 준 사람이 바로 타고르입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존중했는지 이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서로를 아끼는 사이라고 해서 생각까지 똑같은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친한 친구일수록 중요한 문제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대놓고 다투는 법이잖아요.
타고르와 간디가 딱 그랬습니다.
같은 인도를 사랑하고 같은 독립을 바랐지만, '무엇을 근거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자주 갈라졌어요.
두 사람의 차이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사건이 1934년에 일어났어요.
인도 비하르 지방에 큰 지진이 나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죠.
이때 간디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지진은 인도 사회가 불가촉천민, 즉 신분이 가장 낮다고 여겨진 사람들을 오랫동안 억눌러 온 죄에 대한 업(業)의 응보라고요.
나쁜 짓을 했으니 하늘이 벌을 내렸다는 뜻이었어요.
타고르는 이 말을 그냥 넘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지진은 땅속 힘이 움직여서 생기는 자연현상인데, 여기에 '누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았다'는 도덕의 잣대를 갖다 붙이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게다가 지진은 죄인만 골라서 덮치지 않잖아요.
착한 사람도, 억눌린 그 불가촉천민들 자신도 똑같이 무너진 집에 깔렸으니까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한 사람이 "네가 거짓말을 해서 비가 내린 거야"라고 말한다면 이상하겠죠.
타고르가 걱정한 게 바로 이 지점이었어요.
자연의 일과 사람의 도덕을 뒤섞으면, 사람들이 재앙 앞에서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고 정작 해야 할 일, 그러니까 무너진 사람들을 돕고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 일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본 거예요.
같은 불의를 미워하면서도 두 사람이 세상을 설득하는 방식은 달랐어요.
표로 정리하면 이렇게 볼 수 있어요.
| 물음 | 간디의 방식 | 타고르의 방식 |
|---|---|---|
| 지진을 어떻게 봤나 | 죄에 대한 업의 응보 | 도덕과 무관한 자연현상 |
| 사람을 무엇으로 움직이나 | 종교적 확신과 참회 | 이성과 열린 생각 |
| 무엇을 경계했나 | 도덕의 타락 | 이성의 자리를 미신이 대신하는 것 |
이 차이는 지진 하나에만 있던 게 아니에요.
아마르티아 센이라는 학자에 따르면, 타고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민족주의로 흐르는 독립운동에도 조심스러웠다고 해요.
인도가 스스로 독립할 권리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열린 태도를 놓지 않았거든요.
자기편의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늘 한 발 떨어져 이성으로 다시 묻는 사람, 그게 타고르였어요.
(민족주의에 대한 타고르의 생각은 따로 더 깊이 다뤄 볼게요.)
타고르와 간디의 논쟁은 '누가 옳고 누가 틀렸나'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서로를 '위대한 영혼'이라 부를 만큼 존경하는 두 사람이, 중요한 문제에서는 얼마든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죠.
사이가 좋으니까 무조건 맞장구쳐 주는 게 아니라, 아끼기 때문에 아니라고 말해 주는 관계요.
그리고 큰 재앙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묻게 돼요.
이건 누구 탓일까, 무슨 벌일까.
타고르는 그때마다 잠깐 멈춰서 자연의 일과 사람의 도리를 함부로 섞지 말자고, 감정보다 먼저 사실을 보자고 말을 건네는 셈이에요.
타고르는 간디에게 '마하트마'라는 이름을 지어 준 존경하는 벗이었지만, 1934년 비하르 대지진을 두고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간디가 지진을 불가촉천민 억압에 대한 업의 응보라고 하자, 타고르는 자연재해를 도덕과 이어 붙이는 건 옳지 않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죠.
두 사람은 같은 불의를 미워했지만, 간디는 종교적 확신으로, 타고르는 이성과 열린 생각으로 사람을 움직이려 했습니다.
존경하는 사이에서도 옳다고 믿는 것을 두고 정직하게 다투는 일, 그것이 이 논쟁이 오늘까지 남긴 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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