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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최제우는 양반이든 노비든,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다 똑같이 존귀하다고 봤어요. 근거는 간단했어요. 신분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었죠.
조선은 태어날 때 이미 자리가 정해진 사회였어요.
양반 집에서 태어나면 양반, 노비 집에서 태어나면 노비였죠.
마치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캐릭터 등급이 정해져 바꿀 수 없는 것과 비슷했어요.
최제우(1824년부터 1864년까지 살았어요)는 여기에 정면으로 맞섰어요.
그는 신분이 사람의 값을 정할 수 없다고 봤어요.
사람은 누구나 안에 한울님을 모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양반이라 더 높은 하늘을 모시고, 종이라 낮은 하늘을 모시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하늘은 하나뿐이고, 그 하늘을 품은 사람도 다 똑같이 귀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최제우 자신이 신분 차별의 피해자였어요.
그의 아버지 최옥은 이름난 유학자였지만, 어머니는 재가한 과부 한씨였어요.
당시 조선에서는 재가한 여자의 자식은 서얼(첩의 자식)과 다름없이 낮게 취급됐어요.
그래서 최제우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조차 없었어요.
똑똑한데 출발선에서부터 문이 닫혀 있던 셈이에요.
21세부터 31세까지 약 10년간 그는 장사를 하며 전국을 떠돌았는데, 이때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며 무너지는 백성들의 삶을 두 눈으로 봤어요.
자기가 겪은 차별과 남들이 겪는 고통이 겹쳐 보였을 거예요.
'이건 잘못됐다'는 마음이 평등사상의 씨앗이 된 거죠.
최제우의 평등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어요.
그가 가르침을 어떻게 적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는 초기 글을 어려운 한문이 아니라 쉬운 한글 가사체로 지었어요.
노래처럼 네 마디씩 딱딱 떨어져서 외우기 쉬웠죠.
한자를 배운 양반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한자를 모르는 평민과 여성도 함께 부르고 외울 수 있는 글이었어요.
실제로 이 한글 노래들 덕분에 그의 가르침은 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어요.
생각해 보면 이건 대단한 선택이에요.
지식을 어려운 문자 뒤에 숨겨 두면 아는 사람만의 특권이 되지만, 누구나 아는 말로 풀면 모두의 것이 되니까요.
어떤 글자로 쓰느냐 하는 선택 자체가 이미 평등의 실천이었던 거예요.
누구나 한울님을 모신다는 이 생각은 힘이 셌어요.
붙잡히기 전까지 그를 따르는 사람이 수백에서 수만 명으로 추산될 만큼 늘었고, 적어도 열두 곳 넘는 마을과 고을에 조직이 세워졌어요.
1862년에는 지역 지도자인 접주 16명을 임명하기도 했고요.
조선 조정이 이걸 위험하게 본 이유가 여기 있어요.
신분과 상관없이 다 귀하다고 하면, 양반이 위고 상민이 아래라는 조선의 질서가 흔들리니까요.
게다가 사람들이 왕의 명령보다 마음속 하늘을 더 따르게 되면, 위아래로 짜인 유교 사회의 뼈대가 무너질 수 있었어요.
결국 최제우는 1864년 대구에서 처형당했어요.
여기서 조심할 게 있어요.
최제우의 평등사상을 곧바로 '신분제를 힘으로 뒤엎자'는 정치 구호로 읽으면 조금 어긋나요.
학자 수전 신에 따르면 그의 비전은 정치 혁명이라기보다 종교적인 것이었어요.
세상을 뒤집자기보다, 사람마다 자기 안의 귀함을 깨닫게 하려 했다는 거죠.
하지만 '누구나 똑같이 귀하다'는 이 생각은 결과적으로 신분 사회의 상식을 뿌리부터 흔들었어요.
《용담유사》에는 부귀한 자도 예전엔 빈천했고 빈천한 자도 훗날 부귀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구절이 전한다고 소개돼요.
지금 낮다고 영원히 낮은 게 아니라는 말이었죠.
다만 이 구절은 번역으로만 전해져서 원래 표현은 조심스럽게 봐야 해요.
최제우의 평등사상은 어렵지 않아요.
신분이 사람의 값을 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안에 한울님을 모신 귀한 존재다 — 이 한 문장이 전부예요.
재가녀의 아들로 차별받은 그가, 어려운 한문 대신 쉬운 한글로 가르침을 적어 평민과 여성에게 다가간 것 자체가 그 믿음의 증거였어요.
정치 구호는 아니었지만, 글 모르는 사람도 외울 수 있던 그 노래 속에서 사람은 다 똑같이 귀하다는 말이 조용히 번져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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