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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주문은 반복해서 외는 짧은 글귀예요. 영부는 종이에 그려 태운 뒤 물에 타 마시는 부적이고요. 최제우는 이 둘을 매일 되풀이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았는데,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누구나 입으로 외고 몸으로 익히게 만든 점이 핵심이에요.
최제우(1824~1864)는 조선 후기에 동학을 세운 사람이에요.
그가 서른일곱 살이던 1860년 음력 4월 5일,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서 한울님(상제)과 직접 말을 주고받았다는 종교 체험을 했다고 전해져요.
이 자리에서 그는 두 가지를 받았다고 해요.
하나는 주문(呪文), 곧 반복해서 외는 짧은 글귀예요.
다른 하나는 영부(靈符), 곧 종이에 그려 태운 뒤 물에 타 마시는 부적이고요.
'주문과 수련'이란 바로 이 두 가지를 매일 되풀이하는 일이에요.
대단한 책을 읽거나 시험을 치는 게 아니라, 입으로 글귀를 외고 손으로 부적을 태워 마시는 아주 몸에 가까운 방법이었어요.
최제우는 깨달음이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 속에서 몸에 새겨지는 것이라고 본 셈이에요.
주문을 외는 건 좋아하는 노래의 후렴을 몇 번이고 따라 부르는 것과 비슷해요.
짧은 글귀를 소리 내어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뜻을 다 알아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단 입에 붙도록 외다 보면 그 뜻이 조금씩 몸에 배어드는 방식이죠.
최제우는 이런 글귀를 되도록 쉽게 만들려고 애썼어요.
그의 초기 저술은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외기 쉽도록 네 마디씩 끊어지는 가사체의 한글로 지어졌어요.
노래처럼 가락이 있으니 글을 못 읽는 평민이나 여성도 따라 외기 편했고,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어요.
어려운 경전을 통째로 공부해야 하는 다른 가르침과 달리, 동학의 수련은 '외울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던 거예요.
영부는 종이에 그린 부적이에요.
다만 벽에 붙여 두는 게 아니라, 태워서 그 재를 물에 타 마셨다는 점이 특이해요.
마치 약을 물에 풀어 마시듯 몸속으로 넘긴 거예요.
그래서 주문 수련은 처음엔 종교적 깨달음보다 몸의 건강을 되찾는 데 더 무게가 실려 있었어요.
아픈 사람이 영부를 마시고 주문을 외며 몸을 추스르는, 오늘날로 치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돌보는 생활 습관에 가까웠던 셈이죠.
거창한 이론보다 '해 보면 몸이 편해진다'는 실감이 사람들을 먼저 끌어당겼어요.
사실 최제우도 처음엔 힘든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 했어요.
1860년의 체험보다 앞선 시기에 그는 산에 들어가 기도에 매달렸거든요.
1856년 양산 천성산 내원암에서 49일 기도를 시작했다가 숙부의 부고로 47일 만에 그만두었고, 이듬해에는 같은 산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끝까지 마쳤어요.
그런데도 마음이 정말로 채워지는 느낌은 얻지 못했다고 해요.
이건 시험을 앞두고 며칠 밤을 새워 벼락치기를 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남지 않은 느낌과 비슷해요.
산에서의 49일 고행이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 뒤에야, 1860년에 받았다는 주문과 영부라는 훨씬 소박한 방법이 자리를 잡았어요.
특별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일상에서 매일 조금씩 되풀이하는 수련, 그것이 동학이 사람들에게 내놓은 길이었어요.
주문 수련의 목표는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앞서 말했듯 초기에는 몸의 건강을 되찾는 데 중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후대로 가면서 변형된 방식은 영적인 깨달음 쪽으로, 곧 한울님이 매 순간 내 안에 함께 있다는 걸 느끼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갔어요.
같은 주문을 외고 같은 부적을 마셔도, 처음엔 '몸이 낫는 것'이 목적이었다가 나중엔 '내 안에 이미 신이 모셔져 있음을 느끼는 것'으로 바뀐 거예요.
표로 견주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 구분 | 초기의 무게중심 | 후대의 무게중심 |
|---|---|---|
| 주된 목적 | 몸의 건강 회복 | 영적 깨달음 |
| 핵심 체험 | 몸이 편해짐 | 한울님이 내 안에 늘 있음을 자각 |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외고 마시고 되풀이하는 몸의 습관 하나로 건강도 챙기고 마음의 깨달음에도 다가가게 했으니까요.
최제우의 '주문과 수련'은 1860년 종교 체험에서 받았다는 주문과 영부를 매일 되풀이하는 실천이에요.
주문은 노래처럼 반복해서 외는 짧은 글귀였고, 영부는 태워서 물에 타 마시는 부적이었어요.
산속 49일 고행이 그를 채우지 못한 뒤에 자리 잡은 이 방법은, 한자를 몰라도 누구나 외고 마실 수 있을 만큼 쉬웠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처음엔 몸의 건강을, 나중엔 내 안의 한울님을 느끼는 깨달음을 향했지만, 어느 쪽이든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으로 사람을 바꾸려 했다는 것, 그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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