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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보국안민(輔國安民)은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고, 후천개벽(後天開闢)은 낡고 병든 옛 세상이 끝나고 아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뜻이에요. 최제우는 이 둘을 세상을 힘으로 뒤엎는 혁명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을 되찾으면서 새 시대가 밝아오는 일로 보았어요.
최제우(1824~1864)는 조선 후기에 동학(東學)을 세운 사상가예요.
그가 남긴 두 열쇳말이 바로 보국안민과 후천개벽이에요.
먼저 오래된 집을 떠올려 볼게요.
지붕은 새고 기둥은 기울고 마루는 꺼져 있어요.
이런 집은 못 하나 박는다고 고쳐지지 않아요.
최제우가 본 조선이 딱 그랬어요.
그래서 그는 두 가지를 말했어요.
하나는 "이 무너지는 집을 붙들어 식구들을 편안하게 하자"는 보국안민이고, 다른 하나는 "낡은 집을 헐고 아예 새집을 짓자"는 후천개벽이에요.
나라를 지키는 일과 세상을 새로 여는 일, 이 둘이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거예요.
이 생각은 책상 앞이 아니라 길 위에서 나왔어요.
최제우는 스물한 살이던 1844년부터 서른한 살이던 1854년까지 약 10년간 장삿길에 올라 전국을 떠돌았어요.
그 길에서 그는 삼정문란(三政紊亂)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직접 봤어요.
삼정은 나라가 백성에게 거두던 세 가지, 곧 토지세와 군포(군대에 안 가는 대신 내던 베)와 환곡(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곡식)이에요.
이 세 가지가 다 어긋나서, 심지어 죽은 사람과 갓난아기 몫까지 세금을 물리는 일이 벌어졌어요.
백성은 굶주리는데 관리들은 배를 불렸죠.
최제우는 이 어긋난 세상을 두 눈으로 겪었기 때문에, 나라를 걱정하는 보국안민과 세상을 갈아엎는 후천개벽을 함께 떠올린 거예요.
물레 판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볼게요.
지금까지 돌던 낡은 판을 선천(先天), 앞으로 돌 새 판을 후천(後天)이라 불러요.
개벽(開闢)은 그 판이 처음 열리는 순간,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일이에요.
최제우 자신에게도 그런 열림의 순간이 있었어요.
1860년 음력 4월 5일, 경주 구미산 용담정(龍潭亭)에서 그는 한울님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체험을 했다고 해요.
이 사건을 천사문답(天師問答)이라 부르고, 자료는 이 체험 자체를 '개벽'이라고 적어요.
낡은 세상이 저물고 새 세상이 열리는 시작점을 자기 몸으로 겪었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최제우가 한글로 지은 가사집 《용담유사(龍潭遺詞)》에는 "부귀한 자도 예전엔 빈천했고, 빈천한 자도 훗날 부귀해질 수 있다"는 뜻의 구절이 있다고 전해져요(이 표현은 중국어 자료의 번역으로만 확인되니 원문 그대로는 아닐 수 있어요).
지금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새 세상에서는 자리가 바뀐다는 거예요.
눌려 살던 사람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짐작이 가죠.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풀어야 해요.
후천개벽이라고 하면 곧바로 무기를 든 반란을 떠올리기 쉬운데, 최제우 본인의 뜻은 그렇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어요.
학자 수전 신(Susan Shin)에 따르면 최제우의 비전은 정치 강령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었어요.
그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데 있었죠.
실제로 그의 활동과 시기가 겹치는 1862년 경상도 농민봉기도, 자세히 뜯어보면 지방 관리의 부패에 맞선 것이었을 뿐 동학의 가르침이나 반란 강령과는 직접 관련이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도 조선 조정은 동학을 위험하게 봤어요.
관변 문서는 동학을 그냥 두면 옛 중국의 황건적이나 백련교 같은 큰 반란으로 번질 것이라며 경계했어요.
| 보는 사람 | 후천개벽·보국안민을 어떻게 봤나 |
|---|---|
| 최제우 | 마음을 되살려 새 세상을 여는 종교적 가르침 |
| 조선 조정 | 나라를 뒤엎을 반란의 불씨 |
최제우가 그린 새 세상은 마음을 되살리는 개벽이었지만, 지키려는 쪽에서는 그것이 곧 세상을 뒤엎을 불씨로 보였어요.
이 어긋남이 결국 그를 처형장으로 이끌었어요.
보국안민은 어지러운 나라를 붙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뜻이고, 후천개벽은 낡은 세상이 가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뜻이에요.
최제우는 10년간 길 위에서 무너지는 세상을 본 뒤 이 두 가지를 한 몸으로 묶었어요.
다만 그가 그린 개벽은 힘으로 세상을 뒤엎는 혁명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자기 안의 힘을 되찾으며 새 시대가 열리는 종교적 비전에 가까웠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아요.
낡은 집을 새로 짓듯, 그는 마음에서부터 새 세상을 시작하려 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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