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여러분 주변에 밥 먹을 때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 한 명쯤 있지 않나요?
반찬이 조금만 짜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기가 네모반듯하게 썰리지 않으면 입도 안 대는 사람.
놀랍게도,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는 공자가 정확히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논어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밥이 쉬어도 안 먹고, 생선이 상해도 안 먹고, 색이 나빠도 안 먹고, 냄새가 나빠도 안 먹는다."
거기다 옷도 따졌습니다.
잠옷은 반드시 몸보다 길어야 했고,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 이야기부터 하냐고요?
공자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걸 먼저 알아야 하거든요.
기원전 551년, 지금의 중국 산둥성에 해당하는 노나라에서 공자는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하급 무관이었는데, 공자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손에서 자란 공자는 가난했습니다.
창고지기도 했고, 가축을 관리하는 일도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편의점 알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셈이죠.
그런데 이 가난한 청년에게는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배우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했다는 겁니다.
공자 스스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도 나만큼 성실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겸손한 척하면서도 은근히 자신만만한 이 한마디.
여기서 이미 공자의 성격이 보입니다.
공자가 왜 그토록 '질서'와 '예절'을 강조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있긴 한데, 아무도 말을 안 듣습니다.
반장들이 각자 자기가 왕이라고 선언하고, 옆 반을 공격해서 땅따먹기를 합니다.
급식비를 빼돌리고, 마음에 안 드는 선생님은 쫓아내 버립니다.
규칙? 그런 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춘추시대입니다.
주나라라는 큰 왕조가 이름만 남아 있었고, 실제로는 수십 개의 작은 나라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내쫓았습니다.
논어에 기록된 것만 해도, 이 시기에 36명의 군주가 신하에게 시해당했습니다.
공자는 이 혼란의 한가운데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걸까?"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대하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라고요.
왕이 왕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고, 자식이 자식답지 않아서.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세상이 무너진 거라고 공자는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꺼낸 처방전이 바로 다섯 글자입니다.
인, 의, 예, 지, 신.
사람다움, 올바름, 예절, 지혜, 믿음.
이 다섯 글자가 동아시아 2500년 역사의 운영체제가 될 줄은, 아마 공자 본인도 몰랐을 겁니다.
다섯 글자 중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첫 번째, 인(仁)입니다.
한자를 뜯어보면 재미있습니다.
사람 인(人) 옆에 두 이(二).
말 그대로,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혼자서는 인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걸 요즘 상황으로 바꿔볼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뛰어옵니다.
그때 '열림' 버튼을 꾹 눌러주는 것.
이것이 인의 시작입니다.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친구가 슬퍼할 때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것.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실 때 "들어드릴까요?"라고 다가가는 것.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제자 안연이 묻자,
공자가 답했습니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다."
좀 어렵게 들리죠?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나만 편하면 되지'라는 마음을 이기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그리고 공자에게는 이 인(仁)을 실천하는 아주 구체적인 공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한마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놀라운 건, 이 말이 2500년 전에 나왔다는 겁니다.
서양에서 예수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한 것보다 약 500년이나 앞섭니다.
공자는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비슷한 말을 할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아마 몰랐겠지만, 이 말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공자의 통찰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 더.
공자가 말한 인은 그냥 '착하게 살자'가 아닙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너무 가까우면 무례해지고, 너무 멀면 무관심해집니다.
딱 알맞은 사이.
이것을 공자는 중용(中庸)이라고 불렀습니다.
치우치지 않는 것,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
자, 이렇게 멋진 생각을 가진 공자는 당연히 성공했을까요?
천만에요.
공자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공자는 51세에 드디어 노나라에서 관직을 얻었습니다.
법무장관에 해당하는 자리였어요.
그런데 겨우 4년 만에 밀려났습니다.
노나라 임금이 이웃 나라에서 보낸 미녀 악단에 빠져서, 공자의 쓴소리가 귀찮아진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사장이 유튜브에 빠져서 잔소리하는 부장을 해고한 셈입니다.
55세의 공자는 결심했습니다.
"내 뜻을 알아주는 나라를 찾아 떠나자."
여기서 시작된 것이 바로 13년간의 방랑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나라에서 나라로, 수레를 끌고 떠돌았습니다.
위나라에 갔더니 왕이 공자보다 기러기 구경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진나라로 가는 길에는 양식이 떨어져 7일 동안 굶었습니다.
제자들이 쓰러지고, 공자 본인도 비틀거렸습니다.
그런데도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제자 자로가 화가 나서 물었습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습니다.
"군자는 궁해도 버틴다. 소인은 궁하면 아무 짓이나 한다."
이 한마디가 공자의 철학 전체를 요약합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
13년 동안 어떤 나라도 공자를 제대로 써주지 않았습니다.
68세가 되어서야 고향 노나라로 돌아왔습니다.
늙고 지친 몸이었지만, 공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좋아, 나를 써주는 나라는 없었다. 그러면 사람을 키우자."
공자는 남은 생을 교육에 바쳤습니다.
그가 가르친 제자는 3천 명.
그중 뛰어난 제자가 72명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공자의 진짜 위대한 점입니다.
권력을 쥐지 못했지만, 사람을 키워서 세상을 바꿨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공자의 말씀이 바로 논어(論語)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
직접 한 글자도 쓰지 않았는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공자가 2500년 전 사람인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생각하셨다면, 한번 돌아보세요.
설날에 할머니, 할아버지께 세배하죠?
그게 공자입니다.
어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물건을 드리죠?
그것도 공자입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칭찬.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르침.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라"는 말.
이 모든 것의 뿌리에 공자가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동아시아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
그 코드를 작성한 프로그래머가 바로 공자입니다.
물론 공자의 생각이 전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에 대한 시각은 시대의 한계가 분명했고, 지나친 위계질서는 비판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공자의 말을 통째로 외우는 게 아니라, 핵심을 꺼내서 지금에 맞게 쓰는 것입니다.
그 핵심이 뭐냐고요?
다시 한번, 다섯 글자.
인, 의, 예, 지, 신.
그리고 이 다섯 글자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
"나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고 있는가?"
2500년 전 가난한 청년이 던진 이 질문이, 아직도 유효합니다.
해고당하고, 굶주리고, 떠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고집스러운 아저씨.
공자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거창한 철학 체계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한마디입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
어쩌면 이것만 기억해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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