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고아라 부른 선비, 남명 조식의 방울과 칼
왕을 고아라, 대비를 과부라 불렀다
왕을 고아라, 대비를 깊은 궁궐의 과부라 불렀어요.
사약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글이었는데, 명종은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
1555년, 단성현감으로 임명된 조식은 그 자리를 거절하면서 왕에게 상소를 올렸어요.
오늘날 '을묘사직소'라 불리는 이 문서 안에는, 당시 조선 최고 권력자 두 명을 향한 충격적인 표현이 있었어요.
명종을 "선왕이 남긴 외로운 아들", 그리고 어린 왕을 대신해 실제 정치를 쥐고 흔들던 문정왕후를 "깊은 궁궐 안의 한 과부"라 칭한 거예요.
당시 문정왕후는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그 이름을 '과부'라 부른다는 것은 전국 생방송에서 회장 모친을 "그냥 과부 한 분"이라고 불러버린 것과 같았어요.
명종은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상소는 조선의 공식 역사서 실록에 전문이 그대로 실렸어요.
이 사건 하나가 조식이라는 인물의 무게를 말해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