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유웨이: 평등 세상을 설계하고 황제를 복원하려 한 개혁가
1895년 과거 수험생 1,200명이 패전에 분노해 황제에게 집단 청원서를 올렸다
황제에게 집단 항의서를 들이민 사람들은 혁명가가 아니었어요.
과거 시험을 보러 베이징에 올라온 학자 1,200명이었습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완패했어요.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강대국이라 여겨지던 중국이 섬나라 일본에 대규모로 진 사건이에요.
패전의 대가로 중국은 조선과 타이완을 일본에 넘기고 거액의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습니다.
이 충격 속에서 캉유웨이가 움직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정부에 "불평등 조약에 서명하지 말고 제도를 바꿔라"는 집단 성명을 낸 셈입니다.
당시 중국에서 신하나 학자가 이렇게 집단으로 황제에게 요구하는 건 사실상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거든요.
결국 조약은 그대로 체결됐어요.
하지만 이 공차상서는 중국 근대사에서 민간이 집단으로 정치에 개입한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