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볼티모어, 1928년 겨울.
일곱 살 소년 존 롤스는 목이 따끔거렸다.
디프테리아였다.
며칠 뒤 낫고, 학교로 돌아갔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남동생 바비가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비는 살아남지 못했다.
이듬해 존은 다시 아팠다.
이번엔 폐렴.
그는 또 회복했고, 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남동생 토미가 쓰러졌다.
토미도 죽었다.
형이 걸린 병이 동생에게 옮았고, 형은 살았고, 동생들은 죽었다.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유복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
좋은 집에서, 제때 의사를 불렀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가 죽었다.
나머지 한 아이는 살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 소년은 평생 이 질문 앞에서 살았다.
운이란 무엇인가.
태어난 가정, 타고난 몸, 옆에 있던 사람 —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갈리는 일.
그것을 우리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그 불균형을 어떻게든 다루어야 하는가.
스물셋의 롤스는 태평양으로 갔다.
뉴기니 정글, 필리핀 전투.
그는 보병이었다.
총을 들고 걸었고, 동료들이 옆에서 죽었고, 그는 살아남았다.
또 그랬다.
1945년 전쟁이 끝났다.
그는 점령군으로 일본 땅을 밟았고, 거기서 히로시마를 보았다.
도시가 사라져 있었다.
평평했다.
콘크리트와 강철이 녹아 있었다.
한 발의 폭탄이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지웠다.
군인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아이 손을 잡고, 장을 보러 나가던 사람들.
롤스는 진급 제안을 받았다.
장교가 될 수 있었다.
거절했다.
1946년,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글을 썼다.
원폭 투하는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았다고.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수십만의 민간인을 죽이는 것 — 그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계산으로도 옹호될 수 없다고.
그 글에서 그가 쓴 논리는 나중에 그의 책 전체를 관통하게 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두 동생을 잃은 소년이 폐허가 된 도시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이후 평생 써 내려간 것들을 보면, 그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71년, 롤스의 책이 나왔다.
『정의론』.
분량은 두꺼웠다.
논리는 촘촘했다.
그리고 이 책은 당시 영미 철학계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공리주의.
19세기 영국 철학자들이 만든 이 사상의 핵심은 간단하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계산하고, 더하고, 최대치를 선택하라.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다.
열 명이 기뻐하려면 한 명이 희생해야 한다면, 그 편이 더 낫지 않은가.
숫자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롤스는 그 계산 자체를 문제로 봤다.
사람은 더하고 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한 명의 고통을 아홉 명의 행복으로 상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한 명도 온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단순해 보이는 주장을 600페이지로 증명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1950년대 프린스턴에서 시작한 원고가 코넬을 거치고, MIT를 지나고, 하버드에 자리를 잡으면서 계속 다듬어졌다.
그 사이 세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냉전이 깊어졌고, 민권운동이 타올랐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롤스는 책상에 앉아서 썼다.
책이 나오자 세상이 반응했다.
서평이 쏟아졌다.
다른 철학자들이 반박했고, 동의했고, 인용했다.
반세기 가까이 잠들어 있던 영미 정치철학이 한 권의 책 때문에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나왔다.
롤스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상이었다.
이런 장면을 그려보라.
어떤 방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곧 사회의 기본 규칙을 정해야 한다.
세금은 얼마나 거둘 것인가.
누가 어떤 기회를 얼마나 가질 것인가.
어떤 사람이 더 잘 살고 어떤 사람이 더 못 살 것인가.
그런데 이 방의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조건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느 나라 출신인지.
똑똑한지 그렇지 않은지.
건강한지 아픈지.
무지의 베일.
이 베일이 걷히는 순간, 자신이 어느 위치에 놓일지 아무도 모른다.
롤스의 질문은 이것이다.
그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떤 규칙을 선택할까.
그는 논증했다.
누구나 가장 불리한 위치를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에, 가장 불리한 사람도 견딜 수 있는 사회를 설계하려 들 것이라고.
내가 그 밑바닥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 사고실험에는 교묘한 힘이 있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 규칙을 정한다.
이미 부자인 사람은 부자에게 유리한 세금 제도를 원한다.
이미 권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보호하는 법을 원한다.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때 비로소 사람은 진짜 공정함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어느 쪽이든 그 규칙 아래서 살 수 있는지를.
이 장치는 철학 교실 밖으로 나갔다.
법원 판결문에 인용되었다.
공공정책 논의에 등장했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생각한다면"이라는 문장이 학술지도 아닌 일반 신문의 사설에 실렸다.
롤스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강연이 고통스러웠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TV에 나오지 않았다.
공개 토론을 피했다.
600페이지짜리 책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이 자기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게 아이러니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는 강의실 앞에 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버드 철학과 수업.
학생들은 그의 말이 끊기고, 막히고, 다시 시작되는 것을 들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는 정의에 대해 말했다.
왜 어떤 사람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행복으로 계산될 수 없는지.
왜 사회는 가장 불리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받은 것들 — 재능, 가정, 건강 — 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지.
그가 마지막 말을 마쳤을 때, 수백 명의 학생이 일어섰다.
박수가 쏟아졌다.
2002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강의 녹취록이 책으로 묶였다.
『정치철학사 강의』.
그 안에는 홉스, 로크, 루소, 칸트, 밀에 대한 그의 해설이 담겨 있다.
말이 막혔던 그 강의실의 목소리가 지금도 읽힌다.
볼티모어의 소년은 두 동생의 빈 침대를 보았고, 히로시마의 폐허를 걸었고, 20년 동안 원고를 고쳤고, 평생 말을 더듬으며 강의했다.
그가 쓴 질문은 아직 답이 없다.
공정한 세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지만 그 질문이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은, 그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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