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선생님한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알잖아요.
칠판 100번 쓰기, 교실 바닥 닦기, 아니면 아무 의미 없이 숫자 줄줄 더하기.
1788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뷔트너 선생님은 시끄러운 반 아이들을 잠재울 방법을 하나 떠올렸습니다.
"1부터 100까지 다 더해봐. 다 끝낼 때까지 조용히 해."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끙끙대기 시작했습니다.
1 더하기 2는 3, 거기에 3을 더하면 6, 거기에 4를 더하면 10…
그런데 한 아이가 채 1분도 안 되어 석판을 내밀었습니다.
"5050이요."
뷔트너 선생님은 멈칫했습니다.
어떻게 계산한 거지?
그 아이는 열 살짜리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였습니다.
가우스가 쓴 방법은 이렇습니다.
1부터 100까지를 쭉 늘어놓으면, 양 끝에서 가운데로 짝을 지을 수 있습니다.
1+100=101, 2+99=101, 3+98=101…
이런 쌍이 정확히 50개 나옵니다.
101×50=5050.
끝입니다.
이게 단순한 꾀돌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게 아닙니다.
가우스가 한 일은 숫자를 빠르게 계산한 게 아니에요.
패턴을 본 겁니다.
수학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은 암산 속도가 아닙니다.
"이 안에 어떤 규칙이 숨어 있지?"라고 묻는 눈입니다.
열 살 가우스는 이미 그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우스의 집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게르하르트는 벽돌공이었고,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도로테아는 영리했지만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집에서 수학 천재가 나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세 살 때 아버지의 급료 계산 실수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일곱 살에는 스스로 읽기를 깨쳤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선생님을 뛰어넘었습니다.
뷔트너 선생님은 5050 사건 이후 뭔가를 직감했습니다.
이 아이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그는 가장 뛰어난 제자 요한 바르텔스를 가우스의 개인 교사로 붙여줬습니다.
그리고 바르텔스는 이 신동 이야기를 귀족 사회에 퍼뜨렸습니다.
그 소문이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공작의 귀에 닿았습니다.
공작은 직접 소년을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궁전 복도에서 누더기 옷을 입은 열네 살짜리 아이와 마주 앉은 공작은, 아이가 내민 종이를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복잡한 수식과 패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공작은 결정했습니다.
이 아이의 학비를 내주겠다.
대학까지.
재능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알아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우스에게는 운 좋게도 그 재능을 알아봐 주는 눈이 있었고, 그 눈의 주인이 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르디난트 공작의 후원이 없었다면, 가우스는 벽돌을 쌓다 생을 마쳤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천재들처럼.
규칙이 있습니다.
자와 컴퍼스만으로는 그릴 수 있는 도형과 그릴 수 없는 도형이 있다는 규칙입니다.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 — 이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17각형?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처음 들여다본 이후 2000년 동안 아무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1796년 3월 29일 아침, 대학 기숙사 방에서 열아홉 살 가우스가 눈을 떴습니다.
그 날 가우스는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정17각형을 자와 컴퍼스로 작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것도 방법을 손에 쥔 채로.
가우스가 사용한 도구는 당시 막 발전하고 있던 수 이론이었습니다.
17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형태의 소수라는 사실, 그리고 그 특수한 구조가 기하학적 작도와 연결된다는 것을 그는 꿰뚫어봤습니다.
가우스는 이 날의 발견을 일기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 일기를 간직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발견이 나를 수학자로 만들었다."
그전까지 가우스는 언어학과 수학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된 문을 열어젖힌 그 아침 이후, 그는 확신했습니다.
수학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가우스는 나중에 자기 묘비에 정17각형을 새겨달라고 했습니다.
묘비 제작자가 거절했습니다.
"17각형은 원이랑 너무 비슷해 보여서요."
천하의 가우스도 장인의 현실주의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1801년 1월 1일, 이탈리아 천문학자 주세페 피아치는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화성과 목성 사이 궤도를 도는 작은 천체였습니다.
나중에 세레스라고 불리게 될 그것은, 태양계 최초로 발견된 소행성이었습니다.
문제는, 피아치가 세레스를 발견하고 몇 주 만에 다시 태양 뒤로 놓쳐버렸다는 겁니다.
총 관측 기간은 41일.
이 데이터만으로 세레스가 다시 나타날 위치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당시 최고의 수학자들이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관측값이 너무 적고, 태양계 물리 방정식은 너무 복잡했습니다.
그때 스물네 살의 가우스가 나섰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최소제곱법입니다.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관측값에는 항상 오차가 있습니다.
망원경도 완벽하지 않고, 대기도 빛을 굴절시키고, 사람의 눈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 오차들을 가장 작게 만드는 방향으로 최적의 값을 추정하는 방법, 그게 최소제곱법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틀릴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으로 틀리는 방법을 찾자.
가우스는 이 방법으로 세레스의 궤도를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12월 31일, 그가 예측한 위치에서 천문학자들이 세레스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유럽 과학계가 뒤집혔습니다.
아무도 못 찾은 소행성을 종이와 펜으로 찾아낸 사람이 나타난 겁니다.
"수학의 왕자"라는 별명은 이 무렵부터 붙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스마트폰 알람을 껐나요?
그 순간에도 가우스의 수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켜면, GPS 위성 여러 개에서 신호가 옵니다.
각 신호에는 조금씩 오차가 있습니다.
그 오차들을 합쳐 가장 정확한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이 최소제곱법입니다.
가우스가 세레스를 찾기 위해 만든 바로 그것.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이 영상 어때요?" 하고 추천할 때, 배경에는 가우스 분포가 있습니다.
정규분포라고도 부르는 그 종 모양 곡선은, 사람들의 취향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모델링하는 데 씁니다.
시험 점수도, 키도, 공장 불량률도, 광고 클릭률도 —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이 곡선을 따릅니다.
3D 게임이나 영화 그래픽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빛을 표현하는지 놀라본 적 있나요?
그 계산 과정에는 수백만 개의 연립방정식이 있습니다.
그걸 효율적으로 푸는 알고리즘이 가우스 소거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의 GPU가 이 방법으로 픽셀 하나하나를 렌더링하고 있습니다.
MRI 기계도 가우스의 수학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합니다.
비행기 항로 최적화도, 구글 검색 순위도, AI 언어 모델의 학습도 — 가우스가 200년 전 종이에 끄적인 것들이 뼈대가 됩니다.
가우스는 185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기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전화도 없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이디어는 지금 당신 주머니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수학의 이상한 점입니다.
가우스는 스마트폰을 위해 수학을 만든 게 아닙니다.
그냥 아름답고 흥미롭다는 이유로, 패턴이 보인다는 이유로 파고들었습니다.
진짜 쓸모는 나중에 따라왔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가 벌칙 숙제에서 패턴을 발견한 순간부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시작됐는지 모릅니다.
1에서 100까지의 합이 5050이라는 사실보다, 그걸 발견하는 방법이 더 중요합니다.
정답보다 패턴을 보는 눈이 더 오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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