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생일 케이크 위의 초를 떠올려 보세요.
촛불이 활활 타오르다가 꺼지면, 초는 분명 짧아져 있습니다.
아까까지 있던 그 밀랍 덩어리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고요?
그럼 그 연기는 또 어디로 갔을까요?
이 단순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무려 200년 넘게요.
당시 유럽의 똑똑한 과학자들조차 "불 속에는 눈에 안 보이는 원소가 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치 유령처럼 물질 안에 숨어 있다가, 불이 붙으면 빠져나간다고요.
이 유령의 이름은 플로지스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령이 가짜라는 걸 증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한 청년, 앙투안 라부아지에.
그는 초가 타는 이유, 쇠가 녹스는 이유, 우리가 숨 쉬는 이유를 모두 하나로 꿰뚫어 봤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700년대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물어봤다고 상상해 보세요.
"나무가 왜 타요?"
그들은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나무 안에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거든. 불이 붙으면 그게 빠져나오는 거야."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여러분이 운동을 하면 땀이 나잖아요?
당시 사람들은 나무가 타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 안에 '불의 땀' 같은 게 있어서, 열을 받으면 쭉 빠져나온다고요.
빠져나오고 나면 재만 남는 거라고 설명했죠.
그럴듯하지 않나요?
실제로 이 이론은 독일의 화학자 게오르크 슈탈이 정리한 것인데,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쇠를 불에 달구면 녹이 슬잖아요.
플로지스톤 이론대로라면, 뭔가가 빠져나갔으니 쇠는 가벼워져야 합니다.
땀을 흘리고 나면 몸무게가 줄듯이요.
그런데 실제로 저울에 올려 보면, 녹슨 쇠는 원래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뭔가가 빠져나갔는데 더 무거워진다?
이건 마치 가방에서 책을 꺼냈는데 가방이 더 무거워진 것과 같습니다.
말이 안 되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모순을 그냥 넘겼습니다.
"플로지스톤은 아마 마이너스 무게를 가진 걸 거야"라고 변명하면서요.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달랐습니다.
이 모순 앞에서 그는 멈춰 섰습니다.
"잠깐, 빠져나간 게 아니라 들어온 것이 있는 건 아닐까?"
라부아지에는 원래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을 이길 수 없어 화학 실험에 빠져들었죠.
그에게는 남다른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뭐든지 저울에 올려본다는 것.
다른 과학자들이 색깔 변화나 냄새에 주목할 때, 라부아지에는 무게를 쟀습니다.
실험 전과 실험 후, 모든 것의 무게를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1772년, 그는 주석 덩어리를 밀봉된 유리 용기 안에 넣고 가열했습니다.
뚜껑을 꽉 닫아서 바깥 공기가 들어오지도, 안의 공기가 나가지도 못하게요.
가열이 끝나고 용기를 열었을 때, 예상대로 주석 표면에는 하얀 가루가 생겼습니다.
녹슨 거죠.
주석 자체의 무게는 늘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 전체의 무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단서였습니다.
주석이 무거워진 만큼, 용기 안의 공기가 가벼워진 겁니다.
주석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게 아니라, 공기 중의 무언가가 주석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라부아지에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때마침,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흥미로운 발견을 들고 파리를 찾아왔습니다.
수은을 가열하면 나오는 기체가 있는데, 이 기체 속에서는 촛불이 더 밝게 타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리스틀리는 이걸 "탈플로지스톤 공기"라고 불렀습니다.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간 공기라는 뜻이었죠.
아직도 유령 이론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전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이 기체야말로 물질이 탈 때 결합하는 바로 그것, 공기의 핵심 성분이라고요.
그는 이 기체에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산소(Oxygen).
'산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라부아지에 곁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마리안 라부아지에였습니다.
마리안은 영어 논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남편이 최신 연구를 따라갈 수 있게 도왔습니다.
실험 장치를 정밀하게 스케치하고, 실험 노트를 정리했습니다.
마리안이 없었다면 라부아지에의 발견은 훨씬 늦어졌을 겁니다.
라부아지에가 발견한 것을 레고 블록으로 설명해 볼게요.
레고로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이걸 부수면 자동차는 사라지지만, 블록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블록을 다시 모으면 이번엔 비행기를 만들 수도 있어요.
모양은 변하지만, 블록의 총 개수와 무게는 항상 똑같습니다.
라부아지에가 밝혀낸 자연의 법칙이 바로 이겁니다.
"자연에서 아무것도 새로 만들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할 뿐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질량 보존의 법칙입니다.
초가 타면 초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밀랍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바뀌는 겁니다.
초의 무게와 사용된 산소의 무게를 더하면, 생겨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의 무게와 정확히 같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요.
나무가 타서 재가 되어도, 재의 무게와 날아간 연기·기체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원래 나무와 산소의 무게와 같습니다.
쇠가 녹슬면 공기 중 산소가 쇠에 달라붙은 것이니, 당연히 무거워지는 거고요.
200년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히던 "왜 녹슨 쇠가 더 무거울까?"라는 수수께끼가 드디어 풀렸습니다.
이 법칙이 왜 중요하냐고요?
이게 없으면 화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요리할 때 레시피가 있는 것처럼, 화학 반응에도 정확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약을 만들 때 성분의 양을 정확히 맞추는 것, 로켓 연료의 비율을 계산하는 것, 환경오염 물질이 어디로 퍼지는지 추적하는 것.
이 모든 게 "무게는 보존된다"는 원칙 위에 서 있습니다.
라부아지에는 이 법칙을 중심으로 화학의 언어를 완전히 새로 썼습니다.
원소에 체계적인 이름을 붙이고, 화학 반응을 수식처럼 적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교과서에 나오는 화학식, 예를 들어 물이 H₂O라는 표기 방식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라부아지에를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라부아지에의 인생이 영광으로 가득했을 것 같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습니다.
라부아지에에게는 과학자 말고 또 다른 직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금 징수원.
당시 프랑스에는 '세금 징수 회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국가 대신 세금을 걷고 이익을 남기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라부아지에는 이 회사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비싼 실험 장비를 사서 연구에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터졌습니다.
굶주린 시민들이 왕과 귀족, 그리고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간 세금 징수원들에게 분노했습니다.
라부아지에는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과학적 업적은 재판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공화국에 과학자는 필요 없다"는 말이 법정에 울렸다고 전해집니다.
1794년 5월 8일,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겨우 50세였습니다.
그의 동료 과학자 라그랑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머리를 자르는 데는 한 순간이면 충분했지만, 같은 머리가 다시 나타나려면 100년도 부족할 것이다."
처형 후 1년 반이 지나 프랑스 정부는 라부아지에가 무죄였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죠.
마리안은 남편이 남긴 연구 노트와 실험 기록을 정리해 출판했습니다.
덕분에 라부아지에의 과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촛불은 꺼졌지만, 그 빛이 비춘 진실은 남았습니다.
자연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그가 말했듯이, 그의 발견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숨을 쉴 때 들이마시는 산소.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바로 라부아지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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