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여러분 반에 갑자기 처음 보는 전학생이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무도 모르게, 아무 예고 없이. "어? 저 애 원래 있었나?"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 어느 밤하늘에서 정확히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원전 134년, 지중해의 작은 섬. 한 남자가 매일 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히파르코스. 그는 별들의 위치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밤, 전갈자리 근처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별이 갑자기 나타난 겁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이런 별을 '신성(新星)'이라고 부릅니다.
히파르코스의 머릿속에 번개같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잠깐. 만약 하늘에 새 별이 나타날 수 있다면, 없어지는 별도 있을 수 있잖아? 그러면… 지금 있는 별을 전부 기록해 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실의 출석부를 떠올려 보세요. 선생님이 매일 아침 출석을 부르는 이유는 누가 왔고 누가 안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히파르코스는 '하늘의 출석부'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별이 하나라도 빠지거나 새로 오면 바로 알 수 있도록요.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히파르코스에게는 망원경이 없었어요. 컴퓨터도, 카메라도, 심지어 전기도 없었습니다. 있는 거라곤 자기 두 눈, 간단한 각도 측정 도구, 그리고 무시무시한 끈기뿐이었죠.
이 남자가 맨눈으로 해낸 일들을 들으면, 여러분은 아마 입이 벌어질 겁니다.
도서관에 가면 책마다 번호가 붙어 있죠? 그 번호 덕분에 수만 권 중에서 원하는 책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모든 책에 번호를 매기자"라고 결정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히파르코스는 하늘에 떠 있는 별에게 그 일을 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요.
그는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이는 별 하나하나의 위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별은 하늘의 이 방향, 저 별은 저 높이"라는 식으로요. 지금으로 치면 별의 주소를 적은 셈입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이랬습니다. 하늘을 가로와 세로 줄이 있는 커다란 격자판이라고 생각하세요. 가로 줄은 '경도', 세로 줄은 '위도'입니다. 지구본에 그려진 그물 눈금과 비슷하죠. 히파르코스는 각 별이 이 격자판의 어디에 있는지를 하나하나 측정한 겁니다.
측정 도구라고 해봤자, 눈금이 새겨진 반원 모양의 금속판이 전부였어요. 이걸로 별과 별 사이의 각도를 쟀습니다. 지금 팔을 쭉 뻗어서 주먹을 쥐어 보세요. 그 주먹이 하늘에서 차지하는 크기가 약 10도입니다. 히파르코스는 이것보다 훨씬 세밀하게, 별의 위치를 1도보다 작은 단위까지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인류 최초의 '별 카탈로그'입니다. 총 850개의 별이 담겨 있었죠.
그런데 히파르코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별마다 밝기까지 매겼어요.
"가장 밝은 별은 1등급, 겨우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별은 6등급."
시험 점수가 높을수록 좋은 것과 반대로, 별의 등급은 숫자가 작을수록 밝은 거예요. 좀 헷갈리죠? 그래도 이 시스템이 어찌나 똑똑하게 만들어졌는지, 2,200년이 지난 지금도 천문학자들은 히파르코스의 등급 체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뉴스에서 "1등급 밝기의 별"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건 히파르코스가 만든 기준입니다.
안타깝게도 히파르코스의 원본 카탈로그는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약 300년 뒤,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천문학자가 히파르코스의 기록을 자신의 책 『알마게스트』에 담았어요. 이 책은 이후 1,400년 동안 천문학의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히파르코스의 별 카탈로그가 없었다면, 이 위대한 교과서도 없었을 겁니다.
팽이를 돌려본 적 있나요?
팽이가 빠르게 돌 때는 꼿꼿이 서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조금 느려지면 어떻게 되죠? 축이 살짝 기울어지면서, 기울어진 채로 빙글빙글 원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 느릿느릿한 흔들림을 어려운 말로 '세차운동'이라고 합니다.
히파르코스는 지구가 바로 이 팽이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2,200년 전에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설명해 드릴게요.
히파르코스보다 약 150년 전, 티모카리스라는 천문학자가 별의 위치를 기록해 둔 적이 있었습니다. 히파르코스는 자기 관측 데이터와 티모카리스의 오래된 기록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어요.
그랬더니 이상한 점이 보였습니다. 별들의 위치가 아주 조금씩 어긋나 있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옛날 사람이 측정을 잘못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히파르코스는 달랐어요. 별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거의 같은 크기만큼 어긋나 있다는 걸 발견한 겁니다.
"별이 움직인 게 아니야. 우리가 보는 방향이 바뀐 거야!"
지구의 자전축 —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그 보이지 않는 막대 — 이 아주 천천히 원을 그리며 흔들리고 있었던 겁니다. 마치 팽이처럼요. 다만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느려서, 한 바퀴 도는 데 약 26,000년이 걸립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 볼게요. 여러분이 놀이공원 회전 커피잔에 탔다고 상상해 보세요. 커피잔이 천천히 돌면, 주변 풍경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죠? 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여러분이 탄 커피잔(지구)이 돌고 있으니까요.
히파르코스는 150년 사이에 별 위치가 약 2도 이동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2도가 얼마나 작은 각도냐고요? 팔을 쭉 뻗어 새끼손가락을 세워 보세요. 그 새끼손가락 너비가 하늘에서 약 1도입니다. 히파르코스는 새끼손가락 두 개 폭만큼의 차이를, 150년 전 기록과 비교해서 잡아낸 겁니다.
망원경도 없이요.
이 발견은 훗날 뉴턴이 중력 이론을 세울 때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히파르코스가 팽이의 흔들림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속도는 훨씬 더 느려졌을 거예요.
여기서 간단한 실험 하나 해볼까요?
한쪽 눈을 감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세요. 그다음 감은 눈을 뜨고 반대 눈을 감아 보세요. 엄지손가락이 좌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죠?
이 현상을 '시차(視差)'라고 합니다. 양쪽 눈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물체라도 살짝 다른 위치에서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중요한 건 이겁니다. 엄지가 가까이 있을수록 많이 움직이고, 멀리 있을수록 적게 움직입니다.
히파르코스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했습니다.
기원전 129년, 일식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이었는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는 태양의 일부만 가려진 부분일식이었던 거예요.
히파르코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같은 달인데 보이는 위치가 다르다고? 그러면 두 도시 사이의 거리와, 달이 얼마나 다르게 보였는지를 이용해서 삼각형을 그릴 수 있잖아!"
삼각형 하나만 있으면, 나머지 변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거든요. 중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삼각비의 원조가 바로 히파르코스입니다. 사실 그는 '삼각법'이라는 수학 분야를 거의 만든 사람이에요.
히파르코스가 이렇게 계산한 달까지의 거리는 지구 지름의 약 30배였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정밀하게 측정한 실제 거리는요? 지구 지름의 약 30.1배.
네, 거의 정확합니다. 2,200년 전에, 맨눈과 삼각형 하나로요.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지구 바깥 천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한 최초의 시도 중 하나입니다. 히파르코스가 삼각형을 그리지 않았다면, "우주가 얼마나 큰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치고, 히파르코스는 놀라울 만큼 잊혀진 인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는 알아도, 히파르코스는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저작 대부분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거든요. 우리가 히파르코스에 대해 아는 것의 상당 부분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자기 책에 인용한 내용 덕분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1989년, 유럽우주국(ESA)은 특별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 위성의 임무는 히파르코스가 했던 것과 똑같았어요.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 다만 맨눈이 아니라 최첨단 센서를 이용해서요.
이 위성의 이름은 히파르코스(Hipparcos). 2,200년 전 맨눈으로 별을 세던 그 사람의 이름을 딴 겁니다.
히파르코스 위성은 약 118,000개의 별 위치를 히파르코스보다 100배 이상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죠. 수십억 원짜리 우주 망원경이 해낸 일의 원조가, 2,200년 전 섬마을에서 맨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한 사람이라니요.
히파르코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맨눈과 끈기만으로 해냈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창밖의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세요. 별이 보이든 안 보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2,200년 전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같은 눈으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류 최초의 우주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
특별한 장비가 아니라 호기심이 과학을 시작하게 만든다는 것. 히파르코스가 증명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0
개
| 분류 | 제목 | 댓글 | 조회 | 작성자 | 작성일 |
|---|---|---|---|---|---|
최신글 | 로버트 보일 — 보일의 법칙 발견한 근대 화학의 아버지 이야기 | 0 | 17 | 화학읽기 | |
최신글 |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1400년 의학 상식을 뒤집은 해부학의 아버지 | 0 | 17 | 글쓰는사람 | |
최신글 |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이야기 — 지구가 도는 거였다고? | 0 | 20 | 별지기 | |
최신글 | 시몬 스테빈: 소수점을 발명한 수학자 이야기 | 0 | 20 | 소수점탐험가 | |
최신글 | 알하젠(이븐 알하이삼) — 빛의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 이야기 | 0 | 18 | 빛과학 읽는 사람 | |
최신글 | 알비루니 — 산 하나로 지구 크기를 계산한 천재 이슬람 학자 | 0 | 19 | 별재는사람 | |
최신글 | 알비루니 — 천 년 전 GPS 없이 지구 크기를 계산한 천재 학자 이야기 | 0 | 16 | 별을잰사람 | |
최신글 | 갈레노스 — 1400년간 의학을 지배한 고대 로마 의사 이야기 | 0 | 18 | 의학사 탐험가 | |
최신글 | 라부아지에 — 불이 타는 이유를 밝혀낸 근대 화학의 아버지 이야기 | 1 | 18 | 화학사 이야기꾼 | |
최신글 | 라그랑주 업적 쉽게 이해하기: 뉴턴 역학을 다시 쓴 수학 천재 | 0 | 16 | 역학탐험가 | |
최신글 | 토마스 베이즈 쉽게 이해하기: 목사가 만든 AI 핵심 공식 | 0 | 21 | 확률산책 | |
최신글 | 야코프 베르누이와 큰 수의 법칙 — 동전 1만 번 던지면 생기는 일 | 0 | 20 | 확률수학 읽는 사람 | |
최신글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쉽게 이해하기 — 358년의 수학 미스터리 | 0 | 20 | 수학이야기꾼 | |
최신글 | 오일러 업적 총정리: 수학 기호부터 가장 아름다운 공식까지 | 1 | 17 | 오일러읽는사람 | |
최신글 | 오마르 하이얌 — 3차 방정식과 루바이야트를 남긴 페르시아 천재 | 0 | 19 | 별읽는수학자 | |
최신글 | 에라토스테네스 지구 둘레 측정 — 막대기 하나로 지구를 잰 방법 | 0 | 18 | 지구측량가 | |
최신글 | 아폴로니우스와 원뿔곡선 — 원뿔을 잘라 우주를 설명한 수학자 이야기 | 0 | 20 | 곡선수학쌤 | |
최신글 | 아르키메데스 유레카 이야기: 부력 원리부터 지렛대까지 쉽게 설명 | 0 | 19 | 유레카 연구소 | |
최신글 | 히파르코스: 맨눈으로 별 850개를 기록한 고대 천문학자 이야기 | 0 | 19 | 별세는사람 | |
최신글 | 아리아바타: 코페르니쿠스보다 1000년 먼저 지구 자전을 주장한 인도 수학자 | 0 | 22 | 별읽는수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