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학교에 가는 길이 두 개 있다고 해보자.
하나는 큰길을 따라 빙 돌아가는 길.
다른 하나는 골목을 가로질러 쭉 가는 길.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까?
대부분 짧은 길을 고른다.
지각할 것 같은 아침이면 더더욱 그렇다.
재밌는 건, 자연도 똑같이 행동한다는 거다.
물은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흐를 때 가장 빠른 경로를 찾는다.
빛은 공기에서 물로 들어갈 때 꺾이는데, 그 각도가 정확히 가장 빠른 경로를 만드는 각도다.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는데, 그 곡선 역시 자연이 고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궤적이다.
마치 자연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 것 같다.
"최단 경로를 안내합니다"라고 속삭이는 보이지 않는 내비게이션.
18세기에 한 수학자가 이 내비게이션의 작동 원리를 수식 하나로 써냈다.
그의 이름은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
뉴턴이 "힘"으로 세상을 설명했다면, 라그랑주는 "에너지"로 세상을 다시 썼다.
더 짧게, 더 우아하게, 더 강력하게.
이건 수학 교과서 이야기가 아니다.
게으른 천재가 우주의 지름길을 발견한 이야기다.
173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쟁부 재무관이었다.
집안은 아이가 법률가가 되길 바랐다.
어린 라그랑주도 처음엔 법학 공부를 했다.
솔직히, 수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열여섯 살 때, 운명이 방향을 틀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의 논문을 우연히 집어 든 것이다.
핼리는 뉴턴의 이론을 써서 혜성의 궤도를 계산한 사람이다.
그 논문을 읽는 순간, 라그랑주의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수학으로 하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그날부터 라그랑주는 법학책을 덮고 수학책을 펼쳤다.
놀라운 건, 그에게 수학을 가르쳐준 스승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문제를 풀었다.
도서관이 그의 학교였고, 논문이 그의 선생님이었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
19세에 토리노 왕립 포병학교의 수학 교수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이었다.
25세가 되자, 당대 최고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의 풀이가 내 것보다 낫습니다."
수학의 왕이 고개를 숙인 순간이었다.
여기서 잠깐, 뉴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이작 뉴턴은 "힘"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설명했다.
사과가 떨어지는 건 중력이라는 힘 때문이고, 공이 날아가는 건 던지는 힘 때문이다.
이걸 수학으로 쓰면 F = ma, 그 유명한 운동 법칙이 된다.
이 방법은 강력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 뉴턴의 방법도 복잡해진다는 거다.
롤러코스터를 생각해보자.
레일 위를 달리는 차량의 움직임을 뉴턴 방식으로 계산하려면, 모든 순간마다 차량에 작용하는 힘을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중력, 레일이 차량을 미는 힘, 마찰력, 공기저항까지.
경사가 바뀔 때마다 힘의 방향이 달라지니까, 계산이 끔찍하게 복잡해진다.
라그랑주는 이걸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힘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대신, 에너지만 보면 안 될까?"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 있을 때를 떠올려보자.
차량은 높은 곳에 있으니까 위치 에너지가 크다.
아래로 내려가면 위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운동 에너지로 바뀐다.
속도가 빨라지는 거다.
다시 올라가면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돌아온다.
속도가 느려지는 거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이 에너지의 줄다리기만 추적하면, 힘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아도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다.
라그랑주는 이 아이디어를 수식으로 만들었다.
운동 에너지에서 위치 에너지를 빼는 것.
이걸 라그랑지안이라고 부른다.
이 하나의 수식에서 물체의 모든 움직임이 튀어나온다.
뉴턴이 열 줄로 풀 문제를 라그랑주는 세 줄로 풀었다.
1788년, 라그랑주는 이 방법을 집대성한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해석역학》.
이 책에는 그림이 단 하나도 없다.
오직 수식만으로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라그랑주는 이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책에는 도형이 없다"고 서문에 직접 썼을 정도다.
이 방법은 오늘날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심지어 인공지능의 물리 시뮬레이션에까지 쓰인다.
뉴턴의 방법이 자동차의 엔진이라면, 라그랑주의 방법은 내비게이션이다.
엔진은 차를 움직이지만, 내비게이션은 가장 좋은 길을 알려준다.
라그랑주의 업적 중 가장 직관적이고 놀라운 것은 아마 라그랑주 포인트일 것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중력의 줄다리기를 상상해보자.
태양과 지구는 서로 잡아당기고 있다.
그 사이 공간 어딘가에 작은 물체를 놓으면, 태양 쪽으로 끌려가거나 지구 쪽으로 끌려가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지점이 있다.
태양이 잡아당기는 힘과 지구가 잡아당기는 힘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는 곳.
그 지점에 물체를 놓으면, 어느 쪽으로도 끌려가지 않는다.
마치 시소의 균형점처럼, 양쪽 힘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라그랑주는 이런 균형점이 다섯 개 존재한다는 걸 수학으로 증명했다.
L1, L2, L3, L4, L5.
과학자들은 이걸 라그랑주 포인트라고 부른다.
이걸 쉽게 말하면, 우주의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차가 굴러가지 않는 것처럼, 라그랑주 포인트에 우주선을 놓으면 연료를 거의 쓰지 않고도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실제로 이 '주차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쓰이고 있다.
2021년에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지구에서 약 150만 킬로미터 떨어진 L2 포인트에 주차되어 있다.
이곳은 태양과 지구가 모두 같은 방향에 있어서, 망원경이 깊은 우주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태양빛을 한쪽으로 차단하기 쉽고, 지구의 그림자가 방해하지 않는 절묘한 위치.
250년 전, 라그랑주가 종이 위에서 계산한 그 다섯 개의 점이 오늘날 인류가 우주를 탐험하는 거점이 된 것이다.
재밌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목성의 L4와 L5 포인트에는 수천 개의 소행성이 무리 지어 떠 있다.
이들을 트로이 소행성이라고 부른다.
자연이 라그랑주의 수학을 먼저 알고 있었던 셈이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터졌다.
왕이 쫓겨나고, 귀족이 체포되고, 단두대가 바빠졌다.
라그랑주는 이탈리아 태생이었지만, 이미 파리에서 살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아래에서 20년간 베를린에서 일하다가, 대왕이 세상을 뜬 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초청으로 파리에 온 것이다.
혁명의 광풍은 과학자도 비껴가지 않았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공화국에 과학자는 필요 없다"는 것이 재판관의 판결이었다.
라그랑주는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머리를 자르는 데는 한 순간이면 되었지만, 그런 머리가 다시 태어나려면 백 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라그랑주 자신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혁명 정부가 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혁명 정부는 낡은 도량형을 버리고 새로운 측정 체계를 만들고 싶었다.
지역마다 다른 단위를 쓰는 혼란을 끝내고, 하나의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려 했다.
라그랑주는 이 미터법 제정 위원회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오늘 당신이 쓰는 '미터'와 '킬로그램'.
그 단위가 만들어지는 데 라그랑주의 수학이 쓰였다.
그뿐 아니라 라그랑주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라는 학교의 설립에도 참여했다.
이 학교는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교육기관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폴레옹도 이 학교 출신이다.
1813년, 라그랑주는 77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이틀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그것도 삶의 한 기능일 뿐이니까."
수학자다운 마지막 인사였다.
라그랑주가 남긴 것은 공식 몇 개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다.
힘으로 밀고 당기는 대신, 에너지의 흐름을 읽는 눈.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어려운 것을 우아하게 바꾸는 눈.
오늘도 제임스 웹 망원경은 라그랑주가 찾은 주차장에서 우주의 사진을 찍고 있다.
당신이 쓰는 미터법의 뒤에는 그의 계산이 있다.
스마트폰 속 물리 엔진도 라그랑지안 위에서 돌아간다.
250년 전의 '게으른 천재'가 찾은 지름길 위에서, 우리 모두가 걷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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