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수학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선생님이 칠판에 f(x)라고 쓰고, π를 쓰고, Σ 기호를 쓰죠.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이 기호는 대체 누가 만들었어?"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이 기호들 대부분을 한 사람이 정리했습니다.
바로 레온하르트 오일러라는 스위스 수학자입니다.
함수를 나타내는 f(x).
원주율을 뜻하는 그리스 문자 π.
합계를 의미하는 Σ.
허수를 뜻하는 i.
자연로그의 밑 e.
이 기호들이 존재하기 전, 수학자들은 같은 개념을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적었습니다.
마치 같은 언어를 쓰면서 맞춤법이 사람마다 다른 것과 비슷했죠.
오일러가 한 일은 수학에 "공용 언어"를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어디서든 수학 교과서를 펼치면 같은 기호가 보입니다.
한국 학생도, 브라질 학생도, 이집트 학생도 같은 기호로 대화할 수 있죠.
그 출발점에 오일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호 정리는 그가 한 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수학의 거의 모든 곳에 이름을 남겼을까요?
1707년, 스위스 바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파울 오일러는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당연히 아들도 목사가 되길 바랐죠.
어린 레온하르트는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바젤 대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여기서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납니다.
당시 바젤 대학교에는 요한 베르누이라는 유명한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베르누이 가문은 수학자 집안으로 유명했는데, 요한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죠.
오일러는 매주 토요일마다 베르누이를 찾아갔습니다.
수학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르누이는 곧 깨달았습니다.
이 소년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요.
베르누이가 오일러의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이 아이는 목사가 아니라 수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파울은 고민했지만, 결국 아들의 길을 바꿔주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이 존경하는 수학자가 직접 와서 부탁했으니까요.
열아홉 살의 오일러는 스위스를 떠나 머나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합니다.
당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세운 과학 아카데미에서 일하기 위해서였죠.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나라.
하지만 이 청년에게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일러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자, 여기서 재미있는 퍼즐 하나를 풀어볼까요?
옛날 프로이센(지금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강이 흐르고, 강 위에 섬이 두 개 있었어요.
그리고 이 섬들과 강변을 잇는 다리가 총 일곱 개 있었죠.
도시 사람들 사이에 유명한 놀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일곱 개 다리를 모두 딱 한 번씩만 건너서 산책할 수 있을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종이에 점 네 개를 찍고, 그 사이를 선 일곱 개로 연결합니다.
연필을 떼지 않고 모든 선을 딱 한 번씩만 지나갈 수 있을까요?
도시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이 문제를 풀려고 했습니다.
어떤 경로로 가든, 꼭 한 다리를 빼먹거나 한 다리를 두 번 건너게 되었죠.
1736년, 오일러가 이 문제를 듣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리를 직접 건너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봤죠.
오일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땅덩어리는 점으로, 다리는 점을 잇는 선으로 바꾸자.
복잡한 지도가 단순한 그림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증명했죠.
"이 산책은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려면, 선이 홀수 개로 연결된 점이 0개 또는 2개여야 합니다.
그런데 쾨니히스베르크의 네 점은 모두 홀수 개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거든요.
이것이 바로 그래프 이론의 탄생 순간입니다.
점과 선으로 관계를 나타내는 수학이죠.
"그게 뭐 대단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매일 쓰는 것들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최단 경로를 찾는 것.
인스타그램이 "이 사람을 알 수도 있습니다"라고 추천하는 것.
택배 회사가 배달 순서를 정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점과 선의 수학, 즉 그래프 이론 위에서 작동합니다.
오일러가 다리 퍼즐을 풀다가 만든 수학이, 300년 뒤 스마트폰 속에 살아 있는 겁니다.
오일러의 삶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서른 살 무렵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과로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쪽 눈으로 계속 연구하고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1766년, 쉰아홉 살이 되던 해.
왼쪽 눈마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된 거죠.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포기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일러에게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습니다.
놀랍게도, 시력을 잃은 뒤 그의 논문 생산량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오일러는 엄청난 암산 능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복잡한 수식을 전개하고, 계산하고, 결과를 기억해 둘 수 있었죠.
그는 아들과 조수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불러주었고, 그들이 받아 적었습니다.
눈을 감아 보세요.
칠판도 없이, 종이도 없이, 머릿속으로만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오일러는 그것을 매일, 수십 년 동안 해냈습니다.
그가 평생 쓴 논문과 책은 합치면 약 800편이 넘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어떤 수학자보다도 많은 양입니다.
사후에도 출판되지 않은 원고가 너무 많아서, 그가 세상을 떠난 1783년 이후로도 거의 50년 동안 새로운 논문이 계속 발표되었습니다.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이렇게 말했죠.
"오일러를 읽어라. 오일러를 읽어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
수학에도 "아름답다"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수학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 뭐냐"고 물으면, 놀랍도록 많은 사람들이 같은 답을 합니다.
오일러의 등식이라 불리는 이 공식입니다.
e^(iπ) + 1 = 0
처음 보면 알 수 없는 기호들의 나열 같죠.
하지만 이 공식이 왜 아름다운지, 비유로 설명해 볼게요.
수학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다섯 명의 "스타"가 있습니다.
e는 성장과 변화의 세계에서 온 수입니다.
은행 이자가 어떻게 불어나는지를 설명할 때 등장하죠.
i는 상상의 세계에서 온 수입니다.
"제곱하면 -1이 되는 수가 있을까?"라는 엉뚱한 질문에서 태어났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수학에서는 놀라운 일을 해냅니다.
π는 원의 세계에서 온 수입니다.
동그라미를 그릴 때마다 반드시 나타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수죠.
1은 셈의 시작입니다.
세상 모든 숫자의 출발점이죠.
0은 없음을 뜻하는 수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놀라운 발명이죠.
이 다섯 수는 각각 수학의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왔습니다.
서로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 사이였죠.
그런데 오일러의 등식은 이 다섯을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엮어 버립니다.
e^(iπ) + 1 = 0.
마치 다섯 명의 낯선 사람이 우연히 한자리에 모였는데, 알고 보니 모두 친척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 공식을 보고 "수학에서 가장 놀라운 공식"이라고 했습니다.
오일러가 수학에 남긴 발자국은 이 공식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적분학, 정수론, 기하학, 역학, 광학, 천문학, 음악 이론까지.
그가 손대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입니다.
오늘날 공학자가 다리를 설계할 때도, 프로그래머가 암호를 만들 때도, 물리학자가 우주를 계산할 때도 오일러의 수학이 쓰입니다.
어떤 수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수학에서 무언가에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을 찾으면, 대개 그 전에 오일러가 먼저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이 멀어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의 끝없는 호기심.
그것이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뼈대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내일 수학 시간에 π를 쓸 때, 한 번쯤 떠올려 주세요.
그 기호 뒤에 서 있는 눈먼 수학자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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