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여름밤, 귀에서 윙윙거리는 모기 한 마리. 짜증나죠? 그런데 이 작은 벌레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동물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사자도 아니고, 상어도 아니고, 모기입니다.
모기는 매년 약 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범인은 모기 자체가 아니라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라는 병입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극심한 고열이 왔다 갔다 합니다. 40도 넘는 열이 올랐다가 갑자기 오한이 들고, 또다시 열이 치솟죠.
치료하지 않으면 뇌까지 침범해서 목숨을 잃습니다.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은 수십억 명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칭기즈 칸의 손자, 여러 로마 교황도 말라리아로 쓰러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예요.
이 무시무시한 질병과 맞서 싸운 한 여성 과학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투유유(屠呦呦). 그녀는 1600년 된 낡은 책에서 단서를 찾아,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총알보다 더 많은 병사를 쓰러뜨린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말라리아였습니다. 베트남의 밀림은 모기의 천국이었거든요.
당시 말라리아 치료에 쓰던 약은 클로로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말라리아 기생충이 이 약에 '면역'이 생긴 겁니다. 항생제를 너무 많이 쓰면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환자가 속출했습니다.
북베트남의 호치민은 동맹국 중국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우리 병사들이 말라리아로 죽어가고 있다. 새로운 약을 만들어달라."
마오쩌둥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극비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1967년 5월 23일에 시작되었다고 해서 이름은 프로젝트 523. 중국 전역에서 500명이 넘는 과학자가 동원된 대규모 작전이었습니다.
1969년, 이 프로젝트에 한 명의 과학자가 합류합니다. 39살의 투유유. 베이징 중의학연구원에서 일하던 그녀가 팀 리더로 발탁됩니다. 박사학위도 없고, 해외 유학 경험도 없는 과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전통 의학에 대한 깊은 이해였습니다.
투유유의 팀은 처음에 현대적인 방법으로 접근했습니다. 수천 가지 화합물을 하나씩 테스트하는 거죠. 마치 열쇠 꾸러미에서 맞는 열쇠를 찾듯이, 하나씩 넣어보고 안 되면 다음 것을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2,000개가 넘는 물질을 테스트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때 투유유는 발상을 바꿉니다. "현대 과학으로 안 되면,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려보자."
그녀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대 중국 의학서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수백 권의 오래된 처방전을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민간요법까지 수집하려고 지방의 한의사들을 직접 찾아다녔죠. 그렇게 모은 처방이 640개.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합니다.
동진(東晉) 시대의 의학자 거홍(葛洪)이 기원후 340년경에 쓴 책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개똥쑥 한 줌을 물 두 되에 담가 즙을 짜서 전부 마신다."
개똥쑥! 투유유는 이미 개똥쑥을 테스트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들쭉날쭉했어요. 어떤 때는 말라리아 기생충이 죽었고, 어떤 때는 꿈쩍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거홍의 처방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통 한약을 만들 때는 재료를 끓입니다. 그런데 거홍은 끓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물에 담가 즙을 짜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비유를 들어볼게요. 여러분이 생과일 주스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일을 그냥 짜면 신선한 비타민이 그대로 살아있죠? 하지만 과일을 끓인 다음 짜면 어떻게 될까요? 열에 약한 비타민은 대부분 파괴됩니다.
개똥쑥 속 말라리아 치료 성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에 약했던 겁니다. 끓이면 유효 성분이 망가져버렸어요. 1600년 전의 거홍은 이유는 몰랐지만, 경험적으로 "끓이지 말고 차갑게 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투유유는 곧바로 추출 방법을 바꿨습니다. 에테르라는 휘발성 용매를 써서 낮은 온도에서 성분을 뽑아냈어요. 결과는 극적이었습니다.
1971년 10월, 말라리아 기생충 억제율 100%.
실험 쥐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이 완전히 사라진 겁니다. 연구실이 흥분으로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쥐에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바로 사람에게 쓸 수는 없었습니다. 안전한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당시 중국에는 제대로 된 임상시험 체계가 없었다는 겁니다.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연구 환경은 열악했고, 시간은 촉박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여전히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투유유는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내가 먼저 먹겠다."
1972년, 투유유는 자신과 두 명의 동료 연구원에게 직접 그 약을 투여했습니다.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확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습니다. 안전성이 확인되자 곧바로 말라리아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갔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환자들이 빠르게 회복했어요.
이 약의 이름은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 개똥쑥의 학명 'Artemisia annua'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아르테미시닌이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원리를 쉽게 설명해볼게요.
말라리아 기생충은 우리 몸의 적혈구 안에 숨어삽니다.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을 먹이로 삼죠. 헤모글로빈을 소화하면 철 성분이 남는데, 기생충은 이 철을 안전하게 처리해서 살아갑니다.
아르테미시닌은 이 철과 만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킵니다. 마치 불꽃이 화약에 닿으면 폭발하듯이요. 철과 만난 아르테미시닌은 맹독성 활성산소를 만들어냅니다. 이 활성산소가 기생충의 내부를 완전히 파괴해버립니다.
기생충이 숨어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기생충이 먹고 남긴 바로 그 물질을 이용해서 폭탄을 터뜨리는 셈이죠. 기생충 입장에서는 자기 집에 있는 재료로 폭탄이 만들어지는 꼴이니,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르테미시닌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사망률을 절반 이상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아르테미시닌 기반 복합 치료법을 말라리아 표준 치료제로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투유유의 이름은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 523은 군사 기밀이었습니다. 논문에 개인 이름을 넣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죠. 문화대혁명 시대에는 개인의 공적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으니까요. 성과는 집단의 것이었고, 투유유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2011년, 투유유는 미국의 래스커상을 수상합니다. "노벨상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상이죠. 그리고 2015년, 마침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85세의 나이였습니다.
투유유는 여러 면에서 "최초"였습니다. 중국 본토 과학자로서 최초의 노벨 생리의학상. 중국 국적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 과학상. 그리고 박사학위 없이, 해외 유학 경험 없이, 어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도 아닌 상태에서 받은 노벨상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녀를 "세 가지 없는(三無) 과학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없는 것 투성이인 과학자가 인류 역사를 바꾼 거예요.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르테미시닌에도 위기가 찾아오고 있거든요.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이 아르테미시닌에 대한 내성을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클로로퀸이 무력화됐던 것처럼, 아르테미시닌도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답도 다시 자연 어딘가에, 우리가 아직 열어보지 않은 오래된 책 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투유유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이겁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때로는 아주 오래된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진짜 혁신은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1600년 된 책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는 끈기에서 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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