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 마이트너가 원자폭탄을 거부한 이유 - 핵분열 발견의 숨은 주인공
마이트너는 지하 목공실에서 물리학을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녀를 "우리의 마리 퀴리"라 불렀어요.
그녀의 일터는 지하 목공실이었습니다.
1907년, 리제 마이트너는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화학연구소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연구소 측에서 통보했죠.
"2층 실험실은 여자 출입 금지입니다."
회사가 "여성은 본관 출입 금지"라며 창고에서 일하라고 한 것과 같아요.
오늘날이라면 뉴스에 날 일이지만, 당시엔 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트너는 지하 목공실을 개조한 공간에서 5년간, 돈도 받지 않고 연구했어요.
결국 아인슈타인이 그녀에게 별명을 붙였습니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 받은 물리학자예요.
아인슈타인이 누군가에게 그런 별명을 붙인다면, 그 무게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