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가 맨해튼보다 비쌌던 시대
중세 귀족은 집세를 후추로 냈다
1306년 런던의 한 상인은 그해 집세를 은화가 아니라 후추 10파운드로 받았어요.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유럽에서 후추는 금과 같은 무게로 거래됐고, 집세·세금·지참금까지 후추로 지불한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거든요.
영어에는 지금도 'peppercorn rent'라는 관용구가 있어요.
직역하면 '후추알 한 알짜리 임대료'인데, 오늘날엔 '사실상 공짜에 가까운 명목 임대료'를 뜻하는 말이에요.
처음 이 말이 생겼을 땐, 후추 한 알이 진짜로 상당한 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표현이에요.
오늘날 명품 가방을 들고 파티에 나타나는 셀럽처럼, 13세기 귀족은 후추 한 자루를 꺼내 보이는 것으로 부를 자랑했어요.
마트 진열대에서 3천 원이면 사는 그 작은 후추통이, 당시엔 귀족 금고 속에 보관되는 사치품이었어요.
그렇다면 왜 유럽인들은 이렇게 향신료에 목을 맸을까요.
냉장고도, 방부제도 없던 시대를 생각해 보세요.
고기는 금방 썩고, 음식은 하루가 다르게 퀴퀴해졌는데 향신료는 냄새를 덮고 맛을 살리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어요.
그리고 향신료는 유럽에서 한 톨도 자라지 않았어요.
오직 동쪽, 아시아에서만 왔어요.
그래서 유럽인들은 기어코 그 길을 뚫으러 나서기 시작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