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기절한 16살이 뉴턴 옆에 묻혔다 — 찰스 다윈
에든버러 수술실에서 16살이 뛰쳐나갔다
진화론의 창시자는 원래 시골 교회 목사가 될 예정이었어요.
이게 농담처럼 들리지만, 진짜예요.
1825년, 열여섯 살 찰스 다윈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에든버러 의과대학에 입학했어요.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당대 잘 나가는 의사였고, 아들도 당연히 그 길을 걸을 거라 믿었죠.
그런데 첫 수술 참관에서 모든 게 어그러졌어요.
당시에는 마취제가 없었어요.
환자를 수술대에 묶고 아무 통증 완화도 없이 메스를 대는 게 당연한 시대였어요.
다윈은 어린아이가 울부짖는 수술을 지켜보다가 수술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어요.
그 뒤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의대를 포기하자 아버지는 두 번째 카드를 꺼냈죠.
"의사가 싫다면 목사나 해라."
그렇게 다윈은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로 향했어요.
영국 국교회 목사는 당시 꽤 안정된 직업이었어요. 시골 교구에서 설교하며 조용히 사는 삶이었죠.
아버지는 이번엔 통하겠지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다윈은 케임브리지에서 엉뚱한 것에 빠져들었어요.
딱정벌레 수집이었어요.
훗날 자서전에 이렇게 썼어요. "처음 딱정벌레를 맨손으로 잡았을 때의 흥분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어."
수술실에서 도망친 소년은 목사가 되지 못했고, 결국 세상을 바꾼 이론을 쓰게 됐어요.
창조론을 무너뜨릴 사람이 처음엔 그 창조론이 설교되는 교회의 목사 후보였다는 게 참 묘하죠.
5년 뒤 갈라파고스에서 핀치 부리를 그렸다
그냥 새를 모았을 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