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쥔이, 홍콩 옥탑방에서 신유가를 세운 난민 철학자
1949년 계림가 63번지 옥탑에 칠판이 걸렸다
난민이 된 대학 교수가 옥탑방 벽에 칠판을 걸고 학생을 모았어요.
1949년 가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수십만 명이 홍콩으로 밀려들어왔어요.
그 흐름 속에 40세의 철학자 탕쥔이(唐君毅)도 있었어요.
탕쥔이는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명문 대학의 교수였어요.
하지만 그 타이틀은 홍콩 구룡 반도 골목 안, 계림가(桂林街) 63-65번지 옥탑방 앞에선 아무 의미도 없었어요.
그는 중국사학의 대가 첸무(錢穆)와 경제학자 장피제(張丕介)와 함께 그 옥상 방에 칠판 하나를 가져다 놓고 학교를 열었어요.
학교 이름은 신아서원(新亞書院, New Asia College).
낮에는 교실, 밤에는 학생 숙소로 쓰는 방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월세 내는 원룸 하나가 캠퍼스 전부인 셈이에요.
세 사람 모두 대륙 최고 명문에서 강의하던 교수들이었어요.
그랬던 이들이 이제 월세가 밀릴까 걱정하며 다음 학기를 도모하고 있었어요.
낙차가 너무 커서 오히려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