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북향으로 앉힌 승려, 한용운이 싸운 방식
33명 중 유일하게 변호사를 거부한 승려
감옥에 들어간 그는 변호사조차 거부했어요.
재판을 받는 순간, 독립선언이 거짓말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1919년 3월 1일, 한용운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됐죠.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간 그는 세 가지를 선언해요.
변호사 선임 거부, 사식 반입 거부, 보석 신청 거부.
이것이 그의 '옥중 3원칙'이에요.
그 논리는 단순했어요.
"일본이 세운 법정에서 나를 변호하는 순간, 나는 그 법정의 권위를 인정하는 거야."
일본 법원에서 재판받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독립선언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였던 거예요.
경찰서에 끌려가 "변호사 부를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봐요.
그런데 "당신들의 법으로는 나를 재판할 수 없어"라고 답한다면?
그게 한용운이 선택한 방식이었어요.
저항은 거리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법정에서도, 감방에서도 계속되어야 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