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야코비: 쓸모없는 수학을 외친 천재의 역설적 유산
야코비는 유대인이라 왕의 특별 허가 없이는 프로이센 교수가 될 수 없었다
카를 야코비가 대학 교수가 되려면 왕의 특별 허가가 필요했어요.
19세기 프로이센에서 유대인은 국립대학 교수직에 오를 수 없었거든요.
아무리 천재여도, 태어난 종교가 다르면 교단에 설 수 없었어요.
야코비는 1804년 포츠담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어린 야코비는 여덟 살 무렵 이미 대학 수준의 수학을 독학으로 뗐어요.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이 대학원 교재를 혼자 읽은 격이에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베를린 대학을 나왔지만, 교수 자리를 얻으려면 기독교로 개종해야 했어요.
그래서 1825년, 야코비는 세례를 받았어요.
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내려놔야 했던 거예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이 그를 받아준 건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직접 허가를 내린 덕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왕이 손수 허락한 자리에 앉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