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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매킨타이어는 좋은 사람이 되는 힘, 즉 덕은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축구·요리·의술처럼 오래 이어져 온 공동 활동(실천)에 제대로 참여하고 그 활동을 품은 전통 속에 몸담을 때 길러진다고 봤어요. 규칙을 외운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일을 잘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덕이 몸에 붙는다는 뜻이에요.
앨러스터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1929년부터 2025년까지)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예요.
그가 말한 '실천(practice)'은 그냥 아무 행동이 아니라, 오래 이어져 온 복잡한 공동 활동을 가리켜요.
예를 들어 축구를 떠올려 보세요.
축구를 하면 두 가지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어요.
하나는 우승 상금이나 인기처럼 축구 바깥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멋진 패스를 성공시켰을 때의 그 느낌', '경기를 읽는 눈' 같은 축구 안에서만 얻는 것이에요.
매킨타이어는 이 두 번째를 '실천에 내재한 선(goods internal to the practice)'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이런 내재한 선을 얻게 해 주는 마음의 힘이 바로 덕(virtue)이라고 했지요.
그의 말로는 "A virtue is an acquired human quality... which tends to enable us to achieve those goods which are internal to practices"(덕은 우리가 실천에 내재한 선을 얻도록 돕는, 몸에 익힌 인간의 자질이다)예요.
매킨타이어는 1981년에 낸 책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충격적인 비유로 이야기를 열어요.
어느 날 세상 사람들이 과학을 미워하게 되어 실험실을 부수고 과학책을 태우고 과학자를 없앴다고 상상해 봐요.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남은 책 조각을 주워 모아 '과학'을 되살리려 하지만, 그건 겉모습만 과학일 뿐 속은 텅 빈 껍데기가 돼 버려요.
매킨타이어는 오늘날 우리의 도덕 언어가 딱 이 상태라고 봤어요.
'옳다', '착하다' 같은 말은 남아 있는데, 그 말을 떠받치던 배경과 맥락은 부서져 조각(fragment)만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을 말할 때 사실은 "나는 이게 좋아" 하는 각자의 취향 표명에 그치면서도, 마치 객관적 근거가 있는 척한다고 비판해요.
그는 이걸 '정서주의 문화(culture of emotivism)'라고 불렀어요.
도덕이 조각난 이유를 찾다가, 그는 잃어버린 것이 바로 실천과 덕과 전통이라고 결론지었지요.
매킨타이어의 덕은 한 층이 아니라 세 층으로 쌓여요.
표로 보면 이래요.
| 층 | 무엇을 묻나 | 축구 비유 |
|---|---|---|
| 실천 | 이 활동을 잘하게 하는가 | 좋은 선수가 되는 자질 |
| 삶 전체 | 내 인생 전체를 좋게 엮는가 | 축구를 내 삶에 어떻게 자리매김할까 |
| 전통 | 오래된 공동체의 흐름을 잇는가 | 이 종목의 역사와 정신을 잇기 |
덕은 실천을 잘하게 하고, 그 실천들을 하나의 삶으로 엮고, 다시 그 삶을 오래된 전통 속에 자리 잡게 해요.
그는 "The self has to find its moral identity in and through its membership in communities"(자아는 공동체에 속해야 그 안에서 도덕적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라고 했어요.
나 혼자 붕 떠서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서사)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
첫째, 사람들이 매킨타이어를 그냥 '덕윤리학자'라고 부르면 그는 싫어했어요.
본인은 자기 작업이 통상적인 덕윤리학 바깥에 있고, 사회적 실천에 뿌리내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봐야 한다고 밝혔어요.
둘째, '전통마다 합리성이 다르다'는 그의 말을 두고 '그럼 다 상대적이란 거냐'며 상대주의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그는 이를 부인했어요.
전통들끼리는 세계라는 시험대 앞에서 어느 쪽이 더 잘 설명하는지 겨룰 수 있다고 봤거든요.
그는 실제로 젊을 때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1970년대 아리스토텔레스로, 1980년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으로 옮겨 갔어요.
스스로 원고를 찢고 방향을 바꾼 적도 있지요.
그는 생각을 굳게 붙든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전통을 찾아 움직인 사람이었어요.
요즘 우리는 '내 선택은 내 자유'라는 말을 자주 해요.
매킨타이어는 그 자유가 자칫 취향 표명만 남은 텅 빈 도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요.
대신 그는 물어요, 너는 어떤 실천에 진지하게 몸담고 있니, 그 활동 안에서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 배우고 있니, 너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니.
악기를 오래 배우고, 한 가지 일을 정성껏 익히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기준을 존중하며 배워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낯설지 않을 거예요.
좋은 사람됨은 결심 한 번이 아니라, 좋은 것을 잘 해내려는 오랜 참여 속에서 천천히 몸에 배는 것이니까요.
매킨타이어는 덕이 규칙 암기나 개인의 결단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래 이어져 온 공동 활동인 실천에 참여하고 그 실천을 품은 전통 속에 살아갈 때 길러진다고 봤어요.
『덕의 상실』에서 그는 현대 도덕이 조각난 껍데기가 됐다고 진단하고, 실천·삶·전통이라는 세 층으로 덕을 되살리려 했지요.
오늘 내가 무엇에 진지하게 몸담고 있는지 물을 때, 그의 이야기가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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