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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현대인의 도덕 논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건, 옛 공동체가 함께 나누던 '덕'이라는 큰 그림이 깨지고 조각만 남았기 때문이에요. 매킨타이어는 그 덕이 전통과 이야기, 그리고 함께하는 실천 속에서만 다시 살아난다고 봤어요.
이런 상상을 해 볼게요.
어느 날 과학이 통째로 미움을 받아, 실험실이 부서지고 책이 불타고 과학자가 쫓겨나요.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불에 그을린 책 몇 장, 부서진 도구 몇 개를 주워 모아 '과학'을 다시 만들려고 해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는 큰 틀은 사라졌으니 진짜 과학은 아니에요.
앨러스터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1929~2025)는 1981년 책 『덕의 상실(After Virtue)』을 이 무서운 사고실험으로 열어요.
그가 말하려는 건 이거예요.
우리가 쓰는 도덕 언어도 바로 그 '깨진 조각들'과 같다는 거죠.
'옳다', '착하다', '정의롭다' 같은 말은 남았는데, 그 말들이 원래 뿌리내렸던 공동체의 큰 그림은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낱말만 들고 서로 자기 뜻대로 우기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덕의 상실'이에요.
낙태, 전쟁, 세금 같은 문제로 어른들이 아무리 토론해도 결론이 안 나는 걸 본 적 있죠?
매킨타이어는 그 이유를 '정서주의(emotivism)'로 진단해요.
정서주의란, 도덕적인 말이 겉으론 객관적 사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는 이게 싫어', '나는 이게 좋아' 하는 감정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친구랑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 "딸기맛이 더 맛있어"라고 말해도, 그건 취향일 뿐이라 서로 설득이 안 되죠.
정서주의 세상에선 도덕도 딱 이 수준이 돼요.
각자 자기 감정을 정답처럼 우기니까, 목소리 큰 사람이나 힘센 사람이 이기게 돼요.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근거 없이 태도만 내세우는 문화가 현대의 진짜 문제라고 봤어요.
그럼 잃어버린 덕을 어떻게 되찾을까요?
매킨타이어는 세 겹으로 답해요.
첫째는 '실천(practice)'이에요.
축구든 피아노든, 여럿이 오래 함께 갈고닦아 온 활동에는 그 안에서만 얻는 진짜 즐거움이 있어요.
돈이나 상 같은 바깥 보상 말고, 잘 해냈을 때 느끼는 기쁨 자체 말이에요.
덕이란 바로 이 안쪽의 좋음을 얻게 해 주는 몸에 밴 힘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해요.
"A virtue is an acquired human quality the possession and exercise of which tends to enable us to achieve those goods which are internal to practices."
덕은 우리가 익혀서 지니는 사람됨의 자질이고, 그것이 있어야 실천 안의 진짜 좋음에 다다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축구에서 성실함과 용기가 없으면 좋은 경기를 못 하는 것처럼요.
둘째는 '서사(narrative)', 곧 내 삶 전체의 이야기예요.
오늘 하루가 아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어진 한 편의 이야기 속에서 봐야 내 행동의 의미가 살아나요.
셋째는 '전통(tradition)'이에요.
내 이야기는 나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어져 있어요.
그는 "자아는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도덕적 정체성을 찾는다"고 말해요.
| 현대의 도덕(정서주의) | 매킨타이어가 말하는 덕 |
|---|---|
| 각자의 감정 표현 | 함께하는 실천 속의 좋음 |
| 뿌리 없는 낱말 조각 | 전통과 이야기에 이어짐 |
| 힘센 쪽이 이김 | 성실·용기로 다다름 |
흔한 오해 하나.
그를 '덕 윤리학자'라고만 부르는 거예요.
정작 본인은 자기 생각이 보통의 덕 윤리학 바깥에 있고, 사회적 실천에 단단히 뿌리내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고 밝혔어요.
또 하나.
전통을 강조하니 옛것만 지키자는 보수라고 보는데, 그는 개인이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봤어요.
그의 삶 자체가 그런 변화의 이야기예요.
젊을 땐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무신론을 거쳐 1977년 뒤 기독교로 돌아오고, 50대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가톨릭이 됐어요.
학생들에게 그 사상을 의심하라고 가르치려다 오히려 자신이 설득되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은 이렇게 기억하면 좋아요.
우리는 옛 공동체의 도덕에서 낱말 조각만 물려받았고, 그래서 도덕 논쟁이 감정 싸움으로 끝난다는 진단이에요.
답은 조각을 되살리는 것, 곧 함께하는 실천과 내 삶의 이야기, 그리고 전통 안에서 덕을 다시 세우는 일이에요.
딸기맛이 좋다는 우김을 넘어, 왜 그것이 좋은 삶인지 함께 물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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