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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감정주의는 "이건 옳아"라는 말이 실은 "난 이게 좋아"라는 감정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앨러스터 매킨타이어는 현대인의 도덕 언어가 객관적인 척하지만 속은 자기 취향 표명이라 논쟁이 끝나지 않는다고 봤고, 그 대신 전통과 서사와 덕을 되살리자고 했어요.
친구와 "이건 나빠", "아니야, 괜찮아"로 끝없이 다퉈 본 적 있나요?
한참을 싸워도 서로 조금도 설득되지 않고, 결국 "너는 그렇게 느끼는구나"에서 멈춰 버리죠.
바로 이 답답한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이 감정주의(emotivism)예요.
감정주의는 "이건 옳다"거나 "저건 그르다"는 도덕적인 말이, 사실은 아이스크림 고를 때 "난 초콜릿이 좋아"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봐요.
겉보기엔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주장 같지만, 속을 열어 보면 그냥 내 기분과 태도를 밖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색깔을 두고 누가 옳은지 증명할 수 없듯이, 도덕도 그렇다는 입장이죠.
앨러스터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1929~2025)는 1981년에 낸 책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오늘날 우리가 바로 이 감정주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했어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가르친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현대 덕 윤리 부흥의 물꼬를 텄답니다.
매킨타이어는 책 첫머리에서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던져요.
'불안한 제안(A Disquieting Suggestion)'이라 불리는 이야기예요.
어느 날 세상이 과학을 미워하게 되어, 실험실을 부수고 책을 태우고 과학자를 쫓아냈다고 해 봐요.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타다 남은 종잇조각 몇 장을 주워 모아 과학을 되살리려 하지만, 조각만 가지고는 진짜 과학이 될 수 없어요.
겉모습은 비슷해도 알맹이가 빠져 버린 거죠.
매킨타이어는 지금 우리의 도덕 언어가 딱 이 상태라고 봤어요.
'정의', '의무', '선함' 같은 멋진 단어는 남아 있는데, 그 단어들이 원래 자리 잡고 있던 큰 그림, 즉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말해 주는 이야기는 통째로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낱말은 남았지만 그것을 판정할 공통 기준이 없으니, 도덕 논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고 각자 목소리만 커진다고 본 거죠.
감정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도덕이 결국 힘센 사람의 취향이 이기는 게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에요.
객관적인 근거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속은 자의적인 선택이라, 설득 대신 조종만 남는다고 매킨타이어는 경고했어요.
비판만 하고 끝냈다면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겠죠.
매킨타이어는 잃어버린 알맹이를 되찾을 세 가지 열쇠를 내밀어요.
| 열쇠 | 쉬운 뜻 |
|---|---|
| 실천(practice) | 축구나 요리처럼 그 활동 안에 고유한 잘함이 담긴 사회적 활동 |
| 서사(narrative) | 내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것 |
| 전통(tradition) | 여러 세대가 이어 온 공동체의 흐름 |
예를 들어 축구를 생각해 봐요.
반칙으로 이겨도 트로피는 받겠지만, 축구라는 놀이가 주는 진짜 즐거움은 얻지 못해요.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활동 안에 담긴 고유한 좋음을 얻게 해 주는 성품을 덕(virtue)이라 불렀어요.
그의 말로는 "덕이란, 그것을 지니고 발휘하면 실천에 내재한 좋음을 얻게 해 주고, 그것이 없으면 그런 좋음을 결코 얻지 못하게 만드는, 후천적으로 익힌 인간의 성품"이에요.
그리고 이 덕은 혼자 뚝 떨어져서 생기지 않아요.
"자아는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그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적었어요.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친구이고 이웃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비로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다는 거죠.
매킨타이어를 두고 흔히 하는 오해가 몇 가지 있어요.
정리해 두면 좋아요.
첫째, 그를 단순한 '아리스토텔레스 신봉자'나 보통 의미의 '덕 윤리학자'로 묶는 건 정확하지 않아요.
본인은 자기 작업이 사회적 실천에 뿌리내린 것이라, 흔히 말하는 덕 윤리학의 바깥에 있다고 밝혔거든요.
둘째, "현대의 체계적 정치는 거부해야 한다"는 결론 때문에 그를 그저 보수주의자로 보는 시선이 있는데, 이는 지나친 단순화로 지적돼요.
그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자로 스탈린주의를 비판할 윤리학을 세우려 했고, 평생 그 문제를 다시 곱씹었어요.
셋째, 전통이 합리성을 만든다는 그의 생각을 '아무 도덕이나 다 맞다'는 상대주의로 오독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매킨타이어는 이를 부인하며, 세계 자체가 여러 전통의 합리성을 시험하는 잣대가 된다고 답했어요.
이 논쟁은 지금도 학계에서 이어지고 있답니다.
감정주의는 도덕적인 말을 결국 "난 이게 좋아"라는 취향 표현으로 보는 생각이에요.
매킨타이어는 이 때문에 현대의 도덕 논쟁이 끝나지 않고 힘겨루기로 흐른다고 진단했어요.
그가 내민 처방은 낱말만 남은 잔해에서 벗어나, 실천과 서사와 전통이라는 큰 이야기 속에서 덕을 다시 익히자는 것이었죠.
도덕은 아이스크림 취향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어 온 삶의 이야기 안에서 배우는 것이라는 말로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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