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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매킨타이어는 사람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로 봐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이야기 속 한 사람인가"를 알 때 비로소 답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드라마를 중간 한 장면만 뚝 잘라서 보면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모르겠죠.
"저 사람이 왜 갑자기 우는 거야?"
앞뒤 이야기를 알아야 그 장면이 이해돼요.
앨러스터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1929~2025)가 말한 '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가 바로 이거예요.
사람은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이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라는 거죠.
예를 들어 친구가 마당에서 열심히 삽으로 땅을 파고 있다고 해볼게요.
이 행동만 딱 떼어 보면 좀 이상해요.
그런데 "다음 주에 나무를 심어서 정원을 만들려고"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제야 말이 돼요.
매킨타이어는 우리의 모든 행동이 이렇게 '내 삶이라는 큰 이야기' 안에 자리 잡을 때만 뜻을 가진다고 봤어요.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나는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는 사람인가?"와 같은 말이 돼요.
매킨타이어는 대표작 애프터 버추(After Virtue, 1981년)를 아주 무서운 상상으로 시작해요.
만약 과학이 큰 재앙을 겪어서 실험실이 부서지고 책이 불타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종잇조각(fragment)만 주워 모아 과학을 다시 짜맞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겉으로는 과학 같은데, 속은 텅 빈 흉내만 남을 거예요.
매킨타이어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도덕의 말이 딱 이 '조각들의 잔해' 상태라고 봤어요.
왜 그럴까요?
그는 현대 사회를 '정서주의 문화(culture of emotivism)'라고 진단했어요.
정서주의는 "이건 나빠"라는 말이 사실은 "난 이게 싫어" 하는 감정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마치 아이스크림 맛 고르듯, 도덕이 그냥 취향 문제가 되어 버린 거죠.
그러면 서로 옳고 그름을 아무리 따져도 결판이 안 나요.
매킨타이어는 이 혼란에서 빠져나오려면, 사람을 '이야기'로 다시 보는 낡고도 든든한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여기서 매킨타이어의 유명한 3층 구조가 나와요.
축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축구에는 '잘한다는 게 뭔지'를 알려주는 약속이 이미 담겨 있어요.
이걸 그는 실천(practice)이라고 불러요.
축구를 진짜 잘하려면 꾸준함, 용기, 정직함 같은 좋은 성품이 필요하죠.
이 성품이 바로 덕(virtue)이에요.
| 층 | 무엇을 묻나 | 쉬운 예 |
|---|---|---|
| 실천 | 이 활동을 잘한다는 게 뭘까 | 축구를 정말 잘 뛴다 |
| 삶 전체 | 내 인생 이야기는 어디로 가나 | 어떤 선수, 어떤 사람이 될까 |
| 전통 | 내 앞 세대가 물려준 이야기는 뭘까 | 팀과 마을이 쌓아 온 역사 |
덕은 실천 하나만 잘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꿰고, 그 이야기를 더 큰 전통(tradition) 속에 이어 줘요.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적었어요.
"The self has to find its moral identity in and through its membership in communities."
나 자신은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그 소속을 통해서 도덕적 정체성을 찾는다는 뜻이에요.
나는 혼자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물려받은 이야기를 이어 쓰는 사람인 거죠.
여기서 흔한 오해 두 가지를 짚어 볼게요.
첫째, 매킨타이어를 보통 말하는 '덕윤리학자(virtue ethics)'로만 부르면 조금 어긋나요.
본인은 자기 작업이 그 틀 밖에 있다며, '사회적 실천에 뿌리내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봐 달라고 했어요.
성품만 이야기한 게 아니라, 그 성품이 자라는 공동체와 이야기를 함께 봤다는 거예요.
둘째, "전통마다 옳음이 다르다면 결국 아무거나 다 옳다는 상대주의 아니야?"라는 오해예요.
그는 이걸 분명히 부인했어요.
여러 전통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지만, 세계 자체가 그 전통들을 시험하는 기준이 된다고 답했죠.
참고로 그는 1950년대 마르크스주의자에서 출발해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1980년대에 토마스주의로 옮겨 갔는데,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계속 고쳐 쓴 것 자체가 서사적 자아를 몸소 보여 준 셈이에요.
서사적 자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요.
"너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니?"
시험 점수 하나, 오늘 한 실수 하나만 떼어 보면 나는 너무 작고 초라해 보여요.
하지만 그 조각을 '내가 살아가는 긴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놓고 보면, 실수도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매킨타이어의 말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규칙 몇 개를 외우는 게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이어 사는 일이라는 뜻이에요.
내 앞 세대가 물려준 이야기를 받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어 쓰는 것, 그게 그가 말한 덕의 삶이에요.
서사적 자아는 사람을 한순간의 사진이 아니라 이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로 보는 관점이에요.
행동 하나하나는 내 삶이라는 이야기 안에 놓일 때 뜻을 가지고, "나는 누구인가"는 "나는 어떤 이야기를 사는가"로 바뀌어요.
매킨타이어는 도덕이 취향 문제로 흩어진 현대를 걱정하며, 실천과 삶과 전통을 이야기로 잇는 덕의 회복을 말했어요.
오늘 당신의 한 장면도, 더 긴 이야기의 한 대목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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