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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형태-생명(forma-di-vita)은 '어떻게 사는가'라는 삶의 형식과 '살아 있음' 자체를 떼어낼 수 없는 삶을 뜻해요. 주권 권력이 사람에게서 삶의 형식을 도려내 '그저 목숨만 붙은 생명'으로 만드는 것에 맞서, 삶과 그 형식이 처음부터 하나인 상태를 가리켜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축구 선수를 떠올려 보세요.
그 사람에게서 '축구하는 모습'을 빼버리고 '숨 쉬는 몸'만 남긴다면, 그건 더 이상 그 선수가 아니겠죠.
사는 방식과 살아 있음은 원래 붙어 있으니까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년 로마 출생)이 말한 '형태-생명', 원어로 forma-di-vita가 바로 이 생각이에요.
이 말은 삶의 형식(어떻게 살아가는가)과 생명(살아 있음)을 나눌 수 없는 삶을 가리켜요.
우리가 밥을 먹고, 일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방식 하나하나가 곧 '나라는 생명'이라는 거예요.
형식을 뺀 순수한 목숨 같은 건 사실 따로 떼어낼 수 없다는 거죠.
아감벤이 형태-생명을 말한 건, 그 반대편에 아주 무서운 것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바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이에요.
그는 대표작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탈리아어 1995년, 영역본 1998년)에서 고대 그리스가 생명을 두 가지로 나눠 불렀다고 설명해요.
하나는 조에(zoē), 그냥 숨 쉬고 살아 있다는 뜻의 '단순한 생명'이에요.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 어떤 사람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살아가는 삶'이에요.
앞의 축구 선수 비유로 치면, 조에는 '숨 쉬는 몸', 비오스는 '축구하며 사는 삶'에 가까워요.
문제는 권력이 사람에게서 비오스를 벗겨내고 조에만 남겨 버릴 때예요.
아감벤은 이렇게 권력에 붙잡혀 '죽음에 그대로 노출된 생명'을 벌거벗은 생명이라 불렀어요.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벌거벗은 생명은 그냥 자연 상태의 조에가 아니에요.
권력이 개입해 정치적으로 도려낸 생명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자연의 목숨과는 달라요.
아감벤이 든 오래된 예가 '호모 사케르(homo sacer)'예요.
이건 그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옛 로마법에 있던 사람 범주예요.
2세기 문법학자 페스투스(Festus)의 책 『De verborum significatu』는 이 사람을 이렇게 규정했어요.
'그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나, 그를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이상하죠?
죽여도 벌을 안 받는데, 신에게 제물로 바칠 수도 없어요.
신의 법에서도 인간의 법에서도 동시에 쫓겨난 사람이에요.
여기서 '사케르(sacer)'를 그냥 '거룩한·신성한'으로만 읽으면 오해예요.
이 성스러움은 축복이 아니라,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리에 더 가까워요.
아감벤은 여기서 섬뜩한 말을 해요.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다(we are all virtually homines sacri).'
특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누구든 권력이 마음먹으면 벌거벗은 생명이 될 수 있다는 경고예요.
(다만 그의 로마법 해석은 학계에서 논쟁 중이라, 확정된 역사 사실처럼 받아들이진 않는 게 좋아요.)
두 개념을 나란히 놓으면 형태-생명이 무엇을 지키려는 말인지 뚜렷해져요.
| 구분 | 벌거벗은 생명 | 형태-생명 |
|---|---|---|
| 삶의 형식 | 권력이 벗겨냄 | 생명과 하나로 붙어 있음 |
| 누가 결정하나 | 바깥의 주권 권력 | 살아가는 자신 |
| 어떤 상태인가 | 죽음에 노출된 목숨 | 온전한 삶 |
아감벤은 이런 벗겨냄이 '예외상태'에서 일어난다고 봤어요.
예외상태란 주권자가 법을 잠깐 멈추면서도 여전히 법 안에 있는 이상한 상태예요.
그는 근대 정치에서 이 예외가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보통 상태(norm)'가 되어 버렸고, 그럴 때 민주주의도 전체주의로 미끄러질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여기서 자주 인용되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라는 문장은 아감벤이 만든 말이 아니라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명제라는 점은 기억해 두세요.
아감벤은 그걸 비판적으로 이어받아 확장했을 뿐이에요.
형태-생명은 단순한 옛 철학 용어가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그저 목숨만 유지하면 되는 존재로 다뤄도 된다'는 생각에 맞서는 개념이에요.
아감벤은 예외상태가 상시화된 대표적 공간으로 강제수용소를 들며, 이를 '근대의 노모스(nomos of the modern)'라 불렀어요.
사람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드는 장치가 먼 과거가 아니라 근대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거죠.
실제로 그는 2020년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예외상태의 상시화로 본 논평으로 큰 비판을 받기도 했어요.
그만큼 이 이론은 지금 현실과 뜨겁게 맞닿아 있어요.
형태-생명은 '어떻게 사는가'와 '살아 있음'을 나눌 수 없는 삶이에요.
그 반대편에는 권력이 삶의 형식을 벗겨내 죽음에 노출시킨 '벌거벗은 생명'이 있고, 옛 로마법의 호모 사케르가 그 오래된 예예요.
아감벤은 이런 벗겨냄이 예외상태에서 일어나고, 근대에는 그게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고 경고했어요.
그러니 형태-생명은 결국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사람은 도려낼 수 있는 목숨이 아니라, 삶의 형식과 하나인 온전한 생명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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