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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원래 법을 잠깐 멈추는 건 큰 위기에만 쓰는 비상수단이에요. 그런데 아감벤은 근대 정치에서 이 '멈춤'이 예외가 아니라 늘 켜져 있는 기본값(상례)이 되었다고 봐요. 법을 정지시키는 힘이 곧 주권의 정체라는 거죠.
학교에서 화재경보가 울리면 어떻게 되나요?
수업 시간표, 복도에서 뛰지 않기, 조용히 하기 같은 규칙이 순식간에 다 정지돼요.
대신 선생님이 "지금은 비상이니 내 지시만 따르라"고 하죠.
이렇게 평소의 규칙을 잠깐 꺼 두고, 대신 누군가의 결정이 규칙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을 예외상태(독일어 Ausnahmezustand, 이탈리아어 Stato di eccezione)라고 불러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2003년에 낸 책 『예외상태』에서 이걸 파고들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예외상태는 법 바깥이 아니라 법 안에서 벌어져요.
주권자가 법질서를 스스로 정지시키면서도 여전히 법의 틀 안에 있는 이상한 상태죠.
불이 꺼졌는데 스위치는 아직 벽에 붙어 있는 셈이에요.
그리고 아감벤은 이 비상 스위치가 근대에 들어와 예외가 아니라 상례(norm), 즉 늘 켜진 기본값이 되었다고 경고해요.
아감벤은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어요.
1995년에 낸 대표작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아주 오래된 로마법 이야기를 끌어와요.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아감벤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로마법에 실제로 있던 사람 범주예요.
2세기 문법학자 페스투스(Festus)의 기록에 따르면, 이 사람은 '제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존재였어요.
쉽게 말해 신에게 바칠 수도 없고, 죽여도 아무도 벌 받지 않는 사람이에요.
법의 보호막이 완전히 벗겨진 상태죠.
아감벤은 여기서 두 종류의 삶을 구분해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빌려 온 조에(그리스어 zoē, 그냥 숨 쉬고 살아 있다는 단순한 생명)와 비오스(bios, 시민으로서 자격을 갖춘 정치적 삶)예요.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은 이 조에가 주권 권력에 붙잡혀 '죽여도 되는 생명'으로 정치화된 형태를 말해요.
예외상태에서 법이 꺼지면, 사람은 이 벌거벗은 생명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게 아감벤의 걱정이에요.
이 주제는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많아요.
표로 정리해 볼게요.
| 흔한 오해 | 실제 내용 |
|---|---|
|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는 아감벤의 말이다 | 이건 카를 슈미트가 『정치신학』(1922)에서 한 말이에요. 아감벤은 이를 비판적으로 다시 해석했을 뿐이에요 |
| 호모 사케르의 '성스러움(sacer)'은 축복이다 | 반대예요. 신의 법·인간의 법 양쪽에서 쫓겨나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저주에 가까운 양가적 지위예요 |
| 벌거벗은 생명은 곧 자연 그대로의 조에다 | 아니에요. 조에가 주권 권력에 붙잡혀 정치 도구가 된 상태가 벌거벗은 생명이에요 |
특히 첫 줄을 조심해야 해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the sovereign is he who decides on the exception)"라는 유명한 문장은 아감벤이 아니라 슈미트의 명제예요.
아감벤 본인의 독창적 정의로 소개하면 잘못 전한 게 돼요.
아감벤은 예외상태가 가장 극단으로 굳어진 공간으로 강제수용소를 지목해요.
비상이 잠깐이 아니라 아예 상시화된 곳, 그래서 '근대의 노모스(nomos of the modern)', 즉 근대의 숨은 기본 원리라고까지 불러요.
그리고 이런 문장을 남겨요.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다(we are all virtually homines sacri)."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내 법적 보호가 꺼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다만 균형도 필요해요.
그가 로마법을 읽은 방식(죽일 수 있으나 제물로는 못 바친다는 이중성)은 고전학·법사학 쪽에서 논쟁적이라, 확정된 역사 사실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게 안전해요.
또 아감벤은 2020년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예외상태의 상시화'라고 규정했다가 널리 비판받기도 했어요.
이론이 실제 정치 논쟁과 얽혀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죠.
예외상태는 법을 잠깐 멈추는 비상 스위치예요.
아감벤은 이 스위치가 근대에 들어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늘 켜진 상례가 되었고, 그 멈추는 힘이 곧 주권의 정체라고 봤어요.
법의 보호가 꺼지면 사람은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호모 사케르', 곧 벌거벗은 생명으로 밀려날 수 있고요.
다만 '주권자는 예외를 결정하는 자'라는 문장은 슈미트의 것이고, 그의 로마법 해석과 코로나 발언은 논쟁 중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이 어려운 이름 앞에서 덜 헤맬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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