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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고대 로마법이 규정한 사람으로, 누가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지만 신에게 제물로 바칠 수도 없는 존재예요. 아감벤은 이 이중의 추방 상태가 오늘날 주권 권력이 다루는 '벌거벗은 생명'의 원형이라고 봤어요.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완전히 따돌림을 당한다고 상상해 볼게요.
누가 그 아이를 괴롭혀도 아무도 벌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 아이를 반 대표로 뽑아 주지도 않아요.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채 그냥 '내버려진' 상태죠.
호모 사케르는 딱 이런 자리에 놓인 사람을 가리켜요.
이 말은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지어낸 게 아니라 고대 로마법에 있던 범주예요.
2세기 문법학자 페스투스(Festus)의 책 『De verborum significatu』는 호모 사케르를 이렇게 규정했어요.
'인민이 판결한 자로, 그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나 그를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죽여도 되지만 신께 바칠 수는 없는, 인간의 법과 신의 법 양쪽에서 동시에 쫓겨난 사람이에요.
여기서 '사케르(sacer)'를 '신성한'이나 '거룩한'으로만 읽으면 오해가 생겨요.
이 성스러움은 축복이 아니라, 죽여도 벌받지 않는 저주에 가까운 양가적 지위거든요.
사케르는 '건드리면 안 되게 따로 떼어 놓았다'는 뜻이지,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감벤은 1942년 4월 22일 로마에서 태어난 철학자예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정치사상으로 박사논문을 썼으며, 마르틴 하이데거의 세미나에도 참여했어요.
1995년 이탈리아어로 펴낸 주저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이 오래된 로마법 인물을 다시 불러냈죠.
영어 번역본은 1998년에 나왔어요.
그가 이 개념을 꺼낸 이유는 단순해요.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사람이 로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근대 국가 곳곳에 여전히 있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아감벤은 이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예외가 아니라 숨은 중심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아감벤은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다(we are all virtually homines sacri)'라고까지 말했어요.
아감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온 두 그리스어를 빌려 와 사람의 삶을 둘로 나눠요.
하나는 조에(zoē), 그냥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자연적 생명이에요.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 시민으로서 자격과 권리를 갖춘 정치적 삶이고요.
| 구분 | 조에(zoē) | 비오스(bios) |
|---|---|---|
| 뜻 |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 | 자격을 갖춘 사회적 삶 |
| 비유 | 그냥 심장이 뛰는 몸 | 이름·권리·자리가 있는 시민 |
| 상태 | 정치 밖 | 정치 안 |
그런데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은 이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에요.
조에 그 자체와 헷갈리기 쉬운데, 아감벤에게 벌거벗은 생명은 주권 권력에 붙잡혀 정치 안으로 끌려 들어온 뒤 '죽음에 노출된' 생명이에요.
순수한 자연 상태가 아니라, 권력이 손을 대 놓고도 아무 보호를 주지 않는 벗겨진 삶인 거죠.
아감벤이 함께 쓴 짝 개념이 '예외상태(stato di eccezione)'예요.
2003년에 이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호모 사케르』의 속편 격이에요.
예외상태란 주권자가 법질서를 잠시 멈추면서도 여전히 그 법 안에 머무는 상태를 말해요.
큰 재난이 나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평소 규칙을 정지시키는 장면을 떠올리면 돼요.
여기서 자주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 있어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the sovereign is he who decides on the exception).'
다만 이건 아감벤이 지은 말이 아니라 카를 슈미트(Carl Schmitt)가 『정치신학』(1922)에서 한 말이에요.
아감벤은 이 명제를 비판적으로 이어받아 확장했을 뿐이니, 아감벤의 독창적 정의로 소개하면 잘못이에요.
아감벤은 예외상태가 근대에 들어 예외가 아니라 상례(norm)가 되어 버렸다고 봐요.
그래서 민주주의도 전체주의로 미끄러질 수 있다고 경고했죠.
그가 든 극단적 예가 강제수용소예요.
법이 멈춘 상태가 상시로 굳어진 공간, 곧 '근대의 노모스(nomos)'라고 불렀어요.
예외를 통해서만 무언가를 안에 붙잡아 두는 이 구조를, 그는 '무언가가 오직 그 배제를 통해서만 포함되는 관계의 극단적 형태'라고 정리했어요.
아감벤의 통찰은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와도 이어져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관리하는 힘과, 예외를 선포하는 주권의 힘 사이에 '숨은 연결(hidden tie)'이 있다는 거예요.
국경에 갇힌 난민, 권리를 잃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이 이론이 왜 지금도 인용되는지 짐작이 가죠.
다만 조심할 점도 있어요.
아감벤의 로마법 해석, 즉 호모 사케르의 이중성은 일부 고전학·법사학 연구자들이 반박하는 논쟁적 독해라, 확정된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이면 곤란해요.
또 아감벤은 2020년 코로나19 방역을 두고 예외상태가 일상이 되어 버린 사례라고 비판해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강력한 이론일수록 현실에 곧장 갖다 대기 전에 한 번 더 따져 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호모 사케르는 죽여도 처벌받지 않지만 제물로 바칠 수도 없는, 양쪽 법에서 쫓겨난 사람이에요.
아감벤은 이 벌거벗은 생명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주권 권력이 예외상태를 통해 지금도 만들어 내는 자리라고 봤어요.
조에와 비오스 사이에서 벗겨진 삶, 예외가 규칙이 된 정치, 그리고 슈미트에게서 빌려 온 주권의 논리까지, 이 세 조각을 이어 붙이면 아감벤이 무엇을 걱정했는지 보여요.
'우리 모두가 잠재적 호모 사케르'라는 말은 겁주기가 아니라, 누구든 그 자리에 놓일 수 있으니 살펴보라는 물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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