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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감벤이 말한 '잠재성'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제든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나 '벌거벗은 생명'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주권 권력이 "지금은 예외다"라고 결정하는 순간, 그 가능성은 늘 우리 곁에 있어요.
여러분 집에 소화기가 있죠.
불이 안 났어도 언제든 날 수 있어서 걸어 두는 거예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년 로마 출생)이 남긴 유명한 문장도 이 소화기와 비슷해요.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다(we are all virtually homines sacri)."
여기서 '잠재적으로'는 '아직은 아니지만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아감벤이 평생 파고든 물음이 바로 이거예요.
평범하게 잘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보호도 못 받는 처지로 떨어지는 일이 왜 생길까요.
그는 이 가능성이 특별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정치 구조에 원래 숨어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의 잠재성은 '희망'이 아니라 '경고'에 가까운 말이에요.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아감벤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로마법 용어예요.
2세기 문법학자 페스투스(Festus)가 이렇게 적었어요.
'인민이 판결한 자로, 그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나 그를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이런 사람이에요.
누가 그를 죽여도 벌을 받지 않지만, 그렇다고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도 쓸 수 없어요.
법에서도 쫓겨나고 종교에서도 쫓겨난, 완전히 혼자가 된 존재죠.
여기서 조심할 게 있어요.
'sacer(사케르)'를 '신성한·거룩한'으로만 읽으면 안 돼요.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에 가까워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 그냥 노출된, 이중으로 버려진 자리를 뜻하거든요.
참고로 이 로마법 원문을 아감벤처럼 읽는 것에 대해서는 고전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어요.
그럼 멀쩡한 사람이 어쩌다 호모 사케르가 될까요.
아감벤은 '예외상태(Stato di eccezione)'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요.
예외상태란 주권자가 법을 잠시 멈춰 세우는 상황이에요.
규칙을 정지시키면서도 자기는 여전히 법 안에 남아 있는, 묘한 상태죠.
축구 심판을 떠올려 보세요.
보통은 심판도 규칙을 따라요.
그런데 "지금은 특수 상황이니 규칙을 잠깐 멈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심판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선언 앞에서 선수는 아무 보호도 못 받아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는데, 이건 아감벤이 아니라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정치신학』(1922)에서 한 말이에요.
아감벤은 이 말을 가져와 비판적으로 더 밀고 나갔어요.
그가 정말 무섭게 본 지점은 따로 있어요.
근대에 와서 예외상태가 '예외'가 아니라 '상례', 곧 늘 있는 보통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는 강제수용소를 이 예외가 일상이 되어버린 대표 공간으로 봤어요.
아감벤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두 낱말을 빌려 와요.
조에(zoē)와 비오스(bios)예요.
헷갈리기 쉬우니 표로 볼게요.
| 말 | 뜻 |
|---|---|
| 조에(zoē) | 숨 쉬고 먹고 자는 그냥 생명 자체 |
| 비오스(bios) | 이름·권리·자격을 갖춘 정치적 삶 |
| 벌거벗은 생명 | 주권 권력에 붙잡혀 죽음에 노출된 생명 |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
'벌거벗은 생명'을 그냥 자연 그대로의 생명(조에)과 같다고 보면 안 돼요.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은 권력이 일부러 붙잡아서 정치의 대상으로 만든 형태예요.
자격(비오스)은 다 벗겨지고 목숨(조에)만 남은, 그런데 그 목숨마저 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죠.
아감벤은 이 대목에서 국가의 주권과, 우리 몸·생명을 관리하는 정치(생명정치) 사이에 '숨은 연결(hidden tie)'이 있다고 봤어요.
두 힘이 만나는 자리에서 벌거벗은 생명이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옛날 로마법 얘기 같지만, 아감벤은 지금 우리 문제라고 봤어요.
재난·테러·전염병처럼 "지금은 비상"이라는 선언이 나올 때마다 예외상태의 논리가 작동해요.
실제로 그는 2020년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두고 예외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가 많은 반박을 받았어요.
그의 이론이 현실 정치 논쟁과 얼마나 뜨겁게 얽혀 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죠.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다'라는 말이 다시 돌아와요.
그건 겁주려는 말이 아니라, 누구를 보호 밖으로 밀어내는 선이 어디서 그어지는지 똑바로 보라는 요청이에요.
아감벤의 잠재성은, 우리 중 누구든 법이 멈추는 순간 보호받지 못하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예요.
호모 사케르는 죽여도 벌받지 않지만 제물도 못 되는 이중으로 버려진 자리이고, 그런 자리를 만드는 장치가 예외상태예요.
조에와 비오스, 벌거벗은 생명을 구분해 두면, "지금은 비상"이라는 말이 나올 때 그 선 바깥에 누가 서게 되는지 한 번 더 묻게 돼요.
그 물음을 놓지 않는 것, 그게 아감벤이 남긴 숙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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