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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감벤이 말하는 '장치(dispositif)'는 학교든 법이든 스마트폰이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붙잡아 이끄는 모든 제도와 도구를 가리켜요. 그리고 이 장치는 사람의 목숨과 삶을 다스리는 권력과 몰래 이어져 있어요.
놀이공원 입구에 있는 회전문을 떠올려 볼까요?
회전문은 한 사람씩, 정해진 방향으로만 지나가게 만들어요.
누가 억지로 밀지 않아도 우리는 그 문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이죠.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장치(dispositif, 디스포지티프)'가 딱 이래요.
장치는 눈에 보이는 기계만이 아니에요.
학교, 감옥, 법, 종교, 그리고 손에 쥔 스마트폰까지 —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붙잡아 이끄는 모든 것을 뜻해요.
회전문처럼, 우리는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깔려 있는 길을 따라 걷게 되는 거예요.
이 말은 원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쓰던 개념인데, 아감벤이 이걸 훨씬 넓게 가져와 자기 철학의 한가운데에 놓았어요.
중요한 건 장치가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이에요.
조르조 아감벤은 1942년 4월 2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철학자예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세미나에도 참여했어요.
그가 장치라는 개념에 매달린 이유는 하나의 큰 질문 때문이에요.
"권력은 어떻게 사람의 '목숨' 그 자체를 다스리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고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온 두 낱말을 빌려와요.
하나는 조에(zoē), 그냥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자연적인 생명이에요.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 사람으로서 자격과 몫을 갖춘 삶이고요.
원래 이 둘은 나뉘어 있었는데, 근대 권력은 장치를 통해 사람의 '조에', 곧 벌거벗은 목숨까지 관리 대상으로 끌어들였다는 거예요.
이렇게 목숨을 직접 다스리는 정치를 '생명정치'라고 불러요.
장치는 바로 이 생명정치가 사람을 붙잡는 손과 같은 거예요.
아감벤을 유명하게 만든 개념이 '호모 사케르(homo sacer)'예요.
이건 아감벤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옛 로마법에 있던 인물 범주예요.
2세기 문법학자 페스투스는 이렇게 적었어요.
"제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나, 그를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즉 법 바깥으로 완전히 쫓겨나, 죽여도 아무 죄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여기서 조심할 게 있어요.
'sacer'를 '신성한'으로만 옮기면 오해가 생겨요.
이때의 성스러움은 축복이 아니라, 신의 법과 사람의 법 양쪽에서 추방된 저주받은 자리예요.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이 바로 이 호모 사케르의 처지예요.
주의할 점은, 벌거벗은 생명이 앞서 말한 순수한 자연 생명(조에) 그 자체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권력에 붙잡혀 '죽음에 노출된' 상태가 된 생명이에요.
이런 일이 벌어지는 무대가 '예외상태'예요.
예외상태란 주권자가 법을 잠시 멈춰 세우면서도 여전히 그 법 안에 머무는 상태예요.
아감벤은 근대 정치에서 이 예외가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평상시(norm)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민주주의도 전체주의로 넘어갈 수 있다고 봤어요.
그가 강제수용소를 '근대의 노모스(nomos, 법·질서)'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에요.
한 가지 널리 오해되는 문장도 짚어 둘게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라는 말은 아감벤이 아니라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1922년 책 『정치신학』에서 한 말이에요.
아감벤은 이걸 비판적으로 가져와 확장했을 뿐이에요.
아감벤은 무섭게도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다."
특별한 죄인이나 난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법의 보호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거죠.
실제로 그는 2020년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예외상태의 상시화라고 비판했다가 많은 반박을 받기도 했어요.
그의 이론이 오늘의 현실 정치와 얼마나 뜨겁게 얽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에요.
다시 장치로 돌아와 볼게요.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루를 보내는 우리를 떠올려 보세요.
장치는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아요.
대신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걷도록 만들어요.
아감벤이 던지는 물음은 이거예요.
나는 지금 어떤 장치 안에서, 누가 정한 방향으로 걷고 있을까?
아감벤의 장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붙잡아 이끄는 모든 제도와 도구예요.
이 장치는 결국 사람의 목숨(조에)까지 관리하는 생명정치와 이어지고, 그 끝에는 법 바깥으로 내몰린 '호모 사케르'와 '벌거벗은 생명'이 있어요.
예외가 평상시가 된 오늘,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라는 그의 경고는 내가 선 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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